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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요. '암'요?

그 또한 잊히리라

by 민들레

내가 처음 겪은 죽음은 내 아버지의 장례식이었다.

위암으로 시작하셔서 10여 년. 최종으로는 혈액암까지 전이되어 돌아가셨는데 뼈가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살가죽만 덮어진 몸에 복수가 차서 배만 만삭의 임산부 같이 되었던 누워계신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한다. 두 숟가락의 밥을 30분을 씹어서 삼켜야 하는 시간을 지나 이틀에 한 번씩 응급실에 가서 복수를 빼고 수술을 위해 배를 갈랐으나 더 해줄 것이 없어서 배를 닫았다고 우시던 담당 선생님의 이야기까지. 작은 조각조각의 이미지들과 사건 여러 가지를 기억한다. 아버지의 시신은 장기기증해서 이화여대로 연구하러 보냈고 연구가 끝난 추후 기증자 납골당까지 입관한 그런 모든 기억이 다 생생한데도 나는 정작 아버지를 그렇게 만든 "암"이란 존재를 잊고 잘 산다.

장례식장에서는 오히려 눈물이 나지 않았는데 그 뒤에 가끔 불현듯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순간들이 있었다.

도시에서 시골로 이사 와서 여러 가지 작업을 하다가 문득 아빠의 부재가 느껴질 때나 아빠의 손길이 필요할 때 울컥울컥 눈물이 올라오기도 했고, 돌아가신 지 몇 년 뒤에 뉴스에서 위암을 치료하는 무언가를 발견했다고 했을 때도 앞뒤 없이 눈물이 주르륵 흐르기도 했다. 저 발견이 조금 빨랐으면 아빠가 살아계셨을까 싶어서, 이젠 그 어떤 것도 해 줄 수 없는 게 '죽음'이라는 실감이 나서였다.


'암'은 내 삶에 떠오르지 않는 돌멩이처럼 마음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다가 느닷없이 존재감을 나타냈다.

가끔 검강검진서를 작성할 때 가족력에 암환자가 있는지 묻는 질문을 보면 새삼스럽게 내가 암 환자의 가족력을 가졌다는 것을 떠올리게 되는 식이다.

작년엔 그저 편하게 알고 지내던 지인이 본인이 암이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너만 알고 있으면 좋겠다는 고백이 내 마음 저 밑의 '암'이라는 존재를 다시금 떠올리게 만들었다.

나는 그 친구의 병원도 동행해 주마 했고 왜인지 마음이 쓰여서 전보다 더 자주 연락을 하고 찾아가게 되었다. 결론적으로는 암이 그저 알고 지내던 지인을 친구로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엔 같이 책모임하던 분의 암투병 소식을 듣게 되었는데 이번의 암 소식은 내게 경고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암을 잊어도, 모른 듯이 살아도 암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경고 말이다.


아빠의 죽음이 지나갔듯이. 친구의 투병도 지나가는 중이고 이번 글동무의 암도 모쪼록 그렇게 지나가길 바라본다. 이 또한 지나가기를. 암도, 슬픈 마음도, 혹시나 하는 두려움도 말이다.

언제든 물음표와 같이 등장할 수 있는 암이라는 녀석을 그럼에도 마침표로 받아들이면서 하루하루 살아야 한다고 두려운 가운데 마음먹었다. 글동무의 말처럼 요양병원도 사람 사는 데고. 암도 그저 병이고 죽음에 당도하기 직전까지는 살아가야 하는 것이 주어진 일 아니겠는가. 아버지가 본을 보여주셨던 것처럼. 암이었어도 살아가셨던 것처럼. 30분을 씹어서라도 밥 한 숟가락을 먹으려고 하셨던 것처럼.

일단 지금은 운동을 조금 더 주기적으로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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