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힘들다는 감자꽃을 꺾다가
어르신들이 감자꽃은 보기 힘들다고 하셨다.
시아버님이 감자를 좋아하셔서 이사 온 첫 해부터 감자를 심었는데 그러고 보니 나도 몇 년간 감자꽃을 본 기억이 없더랬다. 주먹구구 농사일을 시작해서 이제야 슬슬 뭔가 할 일이 있는지 그때그때 유튜브 선생님께 여쭤보며 일을 하는 데 감자꽃을 따주어야 한다는 거다. 하얀 감자꽃이 하나 보이길래 감자밭으로 가서 꽃대를 모두 훑어가며 따기 시작했다. 감자꽃대는 잎사귀 정중앙에서 아래를 향해 있어서 사실상 핀다 해도 잘 보이지 않는 위치이기도 했다. 이제 피워보려고 꽃망울 진 상태의 감자꽃대를 모두 따다 보니 은근히 감자한테 미안한 마음이 올라오는 것이다.
"감자야 미안! 너는 꽃을 피우고 싶을 텐데. 나는 감자에 영양분이 가라고 꽃을 피우지도 못하게 다 꺾어 버리네"
이렇게 두 개 이랑의 감자꽃을 꺾다 보니 새삼 피지도 못하고 꺾여버리는 좌절들에 대해 생각이 들면서 내가 악독 사장역할이라도 맡은 듯 불편한 마음이 되었다.
그럼에도 세 개 이랑 네 개 이랑을 계속 꺾어나가다 보니 종국엔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는 감자였구나. 꽃을 피워야만 하는 줄 알았는데. 꺾이는 것에 좌절했는데. 사람들은 내 꽃을 원하지 않았구나. 감자를 원했을 뿐이구나."
고추도 가지도 곁순을 다 쳐준다. 방아다리라고 Y자로 벌어지는 구간 아래에 난 잎들은 다 떼 주어야 본 가지들이 튼튼하게 생기고 열매들이 잘 열린다고 말이다. 그러니 마흔 살 넘는 동안 내가 꺾이고 부러졌던 건 이런 가지 치는 작업이었을 거다. 나 자신을 튼튼하게 만들려는 손 가는 작업들.
반대로 내가 좋아 보여서 하려고 했던 건 감자꽃처럼 화려해 보이지만 감자를 키우는 데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열매들이 그렇다. 꽃이 지고 열매가 나는 경우도 있지만 꽃을 원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관상용으로 꽃을 보는 몇몇 화훼를 빼고는 고추는 고추 대로 가지는 가지 대로 방울토마토는 방울토마토 대로 잘 열릴 수 있게 정리되는 잎이 있고 솎아지는 꽃이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화려한 화초일 수도 있어 부러워할 수 있지만 감자인 나는 그 꽃을 그다지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나는 감자만 튼실하게 잘 키워내면 내 할 몫 주어진 역할엔 충실한 것이다.
여덟 개 이랑의 감자꽃을 다 따고 나니 이런저런 시끄러운 마음도 정리되고 마음이 다시 평안의 상태가 된다.
역시 몸을 움직이는 일은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을 다스리는데 참 좋은 일이다.
감자꽃이 보기 힘든 이유? - 아마도 꽃이 피기 전에 다 꺾어버려서 아닐까? 굳이 꽃을 보아야 할 작물이 아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