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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노래 Nov 27. 2021

(대략) 40년 시한부 인생

쓸모없는 일을 해야 하는 이유

40년을 더 살아야 한다는 것이 막막했다. 평균 수명 100세는 아직 좀 현실감이 없고 80이라고 치면 무엇을 하며 그 긴 시간을 보내야 하나. 이도 저도 아닌,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시기에 나는 서 있다. 초심자의 서투름이 열정으로 보이는 시기도 아니고, 대단한 안목과 통찰을 가진 나이도 아니다. 어렸을 때는 청소년기가 중간 지점인 줄 알았는데, 아니다. 평균 수명의 중간이 인생의 가장 애매한, 어쩌지 못하는 중간의 시기이다. 여전히 약간의 키치가 남아있지만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시기이면서, 성숙하고도 유연한 흐름을 갖기에는 역부족인 시기. 어떤 것을 떨쳐내고 어떤 것을 성장시켜야 하는지 알 듯하면서도 도저히 알 수 없는 시기. 실수하면 안되는 시기이면서 여전히 실수가 많은 시기. 그럼에도 집 밖으로 나가는 순간, 아니 집 안에서도, 그러니까 일상의 모든 순간에 철이 가득 든 어른 행세를 해야 하는 시기이다.


어느 날, 그림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한 날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약간의 억울함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남들은 20대에 이루는 것을 부러워한 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그때 했던 생각은 이렇다. “타고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으로 배우는 시기에 배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서조차 배제시켜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철학적으로 긴 문장 같지만, 그냥 억울했다. 지금이라도 배우면 되지, 뭐.


퇴근 후 저녁을 거른 채 7시에 시작되는 수업에 들어가는 일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즐거움만으로 버티기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현실감이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얘보다는 어른에 가까운 나이라면 응당 해야 하는 현실적인 생각. 취미생활을 하겠다고 매주 월요일 저녁 3시간 동안 집을 비우는 다소 이기적인 마음. 그리고 무엇보다 이것의 결과는 무엇인가에 대한 막연함 아니, 쓸모없음.


가끔 취미로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 사람들이 묻는다. “그림을 그리면 스트레스가 풀리죠?” 그때마다 속으로 답한다. “ 스트레스나 풀려고 그리는  아닌데요.” 관계를 생각하는 현실의 대화에선 “, 그럼요.”라고 답한다. 그러니까 나는 화가도 아니면서 무언가 진지하게 그림을 그리는, 마치 지금의 나이와 같이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인 것이다. 누가 알려줬으면 좋겠다. 숱한 자기 계발서 속에  나이엔 이런 것을 해야 합니다라고 알려주는 책이 단 한권이라도 으면 좋겠다.


그렇게 3년 간 다닌 학원을 그만두었다. 궁금했다. 나는 과연 (어느 정도 강제성이 있는) 학원을 그만두고 난 이후에도 그림을 계속 그릴 것인가. 더 이상 그리지 않는다면 천재도 아니고, 배울 나이도 아닌 나는 예전에 나도 취미로 그림 좀 그렸었다고 말하는 노인이 되겠지. 그렇게 스스로가 궁금했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고, 아무도 관심조차 없는, 게다가 뛰어나지도 않은 그림을 계속 그린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여전히 모르겠다. 그런데 의미 없고 쓸모없는 것들이라고 해야 모두 버린다면 그것이야말로 디스토피아가 아닐까 싶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디스토피아로 만들지 않으려면, 무언가 쓸모없는 일도 필요해. 그렇게 위안해본다. 그리고 아무거나 또 끄적거린다. 언제가 끝일지 여전히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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