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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노래 Nov 20. 2021

사랑의 역사 #6

숨을 고른 후에도 호흡이 가라앉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안정이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언제였을까. 언젠가 인적조차 없는 곳에 나만의 집을 짓고 살아도 제대로 된 쉼을 얻을 수는 없을 거야. 쉼에 대한 갈망은 공포로 변해가고 있었다. 어차피 믿을 것은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사람을 믿는 일이 자기 자신을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돌아본 사람이라면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난 속고 말았다. 피부 자극일 뿐인 스킨십을 사랑이라고 믿고, 자기감정에 충실한 고백을 나를 향한 것이라고 믿고, 하루도 못 갈 약속을 영원을 위한 맹세라고 믿었지. 속아버린 대가는 기꺼이 치르겠지만, 가빠지는 숨만큼은 견딜 수가 없었다. 따뜻한 햇살, 차가운 바람, 포근한 커피 향, 부드러운 음악.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을 대할 때마다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다 거짓말이잖아. 왜 자꾸 나에게 거짓말을 해. 어차피 언젠가 다 날 배신할 거잖아. 저리 꺼져. 대답도 없고 소리도 없었다. 가쁜 숨소리만이 온몸을 감쌌다. 아무것도 잃지 않으려면 아무것도 믿어서는 안 된다는 진리를 깨달은 대가는 가쁜 숨이었다. 더 이상 제대로 숨을 쉴 수는 없었지만 더 이상 아무 일도 당하지 않겠지. 그것으로 충분해. 그깟 숨 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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