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노래 Jan 26. 2022

뻔한 이야기가 아름다운 칼이 되었다.

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아빠]

뻔한 이야기였다.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은, 아니 사이가 나쁜 부녀 사이가 몇 년 동안 떨어져 살다가 아빠가 큰 병에 걸려 다시 만난 후 벌어지는 이야기. 그렇게 서로의 깊은 마음을 알게 되고, 울게 되고, 관객들도 울게 되는 이야기. 슬플 수밖에 없는 이야기.

새로울 것 없는 기분으로 공연 전 무대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다소 거칠게 끊김과 이어짐이 반복되는 밴드의 연습 소리는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우스 오픈 음악으로 잘 어울렸다. 다닥다닥 소극장에 잘 어울리는 연출이라는 생각도 잠깐 했던 것 같다.


주인공인 ‘주영 혼자 하드 캐리 하는  초반은 연출이 돋보였다. 영상과 음악과 배우의  떨어지는 신선한 전환과 마음을 내어주기 충분한 무대. ‘그래,  정도면 좋지라는 생각을 지나 어느새 ‘ 병실 침대 위의 아빠 ‘병삼 마주하고 있었다. 뻔한 갈등인데 배우들의 몰입한 연기가 관망하려는 나를 병원 안으로 끌어들였다. 마치 ‘거기 계속 그렇게  있을 거야?’라고 말을 하는 듯했다.


아빠 ‘병삼’의 넘버인 [밤의 한숨]에 이르자, 이런 뻔한 이야기에 감정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저항이 무색하게, 어느새 울고 있었다. 분명히 뻔한 이야기인데, 아빠는 아프고, 생이 얼마 남지 않았으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이야기에 서로의 마음이 돌아서는, 극작의 유서 깊은 스토리인데 나는 울고 있었다. 이후 그들이 겪는 쉬운 이해와 오해의 확증, 화해의 시도와 이미 다한 용서의 순간마다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뻔한 이야기. 내가 살고 싶었던 것은 뻔한 이야기였다. 뻔하게 살고 싶지 않아서 몸부림쳤던 모든 일들은 사실은 뻔하게 사는 것이 너무 어려워서 스스로 만든 변명일 뿐이었다. 남보다 내가 나을 거라는 고집, 평범하게 살지 않는다는 포장, 화려한 것이 진리라는 헛된 믿음은 사실은 뻔한 삶을 동경하다 못해 포기해버린 자신에 대한 마지막 희망이었다.

삶은 뻔한 것이라고. 당연한 것들과 아름다울 만큼 평범한 것들이 모여서 만드는 뻔한 이야기가 진짜 행복한 삶이라고. 오해하고 이해하고 웃고 우는 그런 평범해 보이는 일들이 사실은 살면서 단 한 번도 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그 삶이 부러워서, ‘주영’이 부럽고, ‘병삼’이 애달파서, 이상한 나라에서 만난 마음과 진실이 아름다워서 내내 울고 말았다.

그렇게 뻔한 삶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렇게 솔직해질 수 있다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면.

작가의 이전글 (대략) 40년 시한부 인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