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먼저 시작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는데, 늘 그것으로 다투었다. 누가 먼저 시큰둥해졌는지, 누가 먼저 볼이 굳어졌는지, 누가 먼저 사소한 것에 신경을 세웠는지. 그 지긋지긋한 ‘누가 먼저’ 문제는 마지막까지 이어졌다. 끝날 듯한 2월의 겨울 아침에 빙판이 지듯, 봄의 싹을 짓밟기라도 하듯이 우린 ‘누가 먼저’에 몰두했다. 세상에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우리가 무엇을 말하든, 사랑의 어느 지점에 놓여있든, 오로지 시작한 사람이 모든 것을 뒤집어쓰는 게임. 끝을 먼저 말하는 쪽이 치졸하고, 비겁한 배신자. 반대편은 온전하며 순결한 피해자가 되는 게임. 칼을 세워두고 서로의 얼굴을 밀어내는 게임. 결국 상대방의 얼굴에 칼이 닿는 것을 못 견디는 쪽이 배신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사랑이 곧 배신이 되는 게임이었다. 그래, 기꺼이 내 얼굴을 반으로 갈라 너를 구원해줄께. 사랑을 증명해내고 얻은 것은 단 하나. 온전한 끝. 우리도,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