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December 2024
점심시간마다 혼자서 먹은 돈가스김치나베, 4층 교구사업부 내 자리, 새벽 5시 36분에 본 나무, 아이에게서 우연히 받은 뽀뽀, 공원에서 본 책들, 현진 언니가 꽉 안아준 밤
많은 장면들이 스쳐서 적어보았어요.
하나의 장면만 고를 수 없어서, 많은 장면들이 스치는 한 해를 보낸 것 같아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다채로웠던 2024년. 저 장면 중 하나를 골라 내가 언제, 어디에 있든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게 글을 써본다면 저는 아이에게서 우연히 받은 뽀뽀 장면을 고르고 싶습니다.
여름날 목요일 오후 2시와 3시 사이었을 거예요. 우리 반의 유일한 아기 Tasneem이 낮잠 자던 시간이었으니까. Tasneem에게 우유를 먹이고 토닥토닥 가슴을 두드렸어요. 그 큰 눈망울이 스르륵 감기는 걸 확인하고 교실로 나왔어요. 다음날 크리스마스 콘서트 준비를 해야 하니까 서둘러야 했거든요.
교실로 나오니 곧 큰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연산을 배우고 있었어요. 아이들은 숫자 5를 S처럼 썼고, 유일하게 Jarvin만 제대로 5를 썼어요. 아이들이 꼬물꼬물 쓰는 걸 보면서, 이 아이들이 언제쯤 숫자 5를 제대로 쓸까 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때 페이퍼를 끝낸 Ethan이 저에게 와서 알파벳 매트를 달라고 말하더라고요. 내일 크리스마스 콘서트가 있어서 새로운 장난감을 꺼내줄 수 없어. 교실이 번잡해질 수 있거든. 미안해 Ethan.이라고 말하니까 Ethan이 이해한다고 말해주었어요. 이해해 줘서 고맙다고 Ethan에게 말하고 Ethan을 꽉 안아주었어요. 이해심이 많고 사려 깊은 Ethan.
아이들의 페이퍼를 확인하다가, 이젠 정말 내일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위한 종이를 잘라야 하니까. 날카로운 가위와 검은 종이를 꺼냈어요. 알파벳이 적힌 프린트를 검은 종이 위에 올리고 알파벳 모양 그대로 프린트와 검은 종이를 같이 오렸어요. 싹둑싹둑. 알파벳 모양의 검은 종이만 나올 수 있도록.
아이들은 놀다가 블록을 부시고 인형을 쓰다듬고 소리 지르고. 저는 싸우는 아이가 없는지, 다친 아이가 없는지 중간중간 확인하며 정신없이 가위로 종이를 오렸습니다. 그러다가 Jimin과 Ethan이 다가와서 무얼 하냐고 묻더라고요. 내일 크리스마스 콘서트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어요. Jimin이 제 머리를 장난스럽게 잡아당기고, Ethan은 제가 오리고 있는 알파벳을 읽었어요. That's a Big R! 맞아. 그건 R이라고 읽을 수 있지. 선생님은 지금 종이를 오리고 있어.라고 말했어요.
그러더니 Ethan이 제 머리를 잡아당기는 Jimin에게 그만하라고 말했어요. 말이 끝나자 힘내라면서 제 볼에 연거푸 뽀뽀를 해주었어요. 작은 입술로 여러 번. 조금 놀라서 Ethan을 잠시 보다가 응원해 줘서 고맙다고 꽉 안아줬어요. 누군가에게 힘내라고 응원의 뽀뽀를 받은 건 처음이어서 얼떨떨했어요. 이 작은 아이가 가진 사랑이 그대로 내 마음으로 들어와 전달된 느낌이었어요.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사랑의 크기여서 집에 갈 때도 멍했습니다. 기분 좋은 멍함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