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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ed vs Want
by
블레스미
Dec 7. 2024
나는
물욕에 자물쇠를 단단히 걸어놨다.
게다가
열쇠는 이름을 적지 않은 채로
열쇠 꾸러미에 엮어 놨으니
그걸 찾는 것보다
이것저것 쑤셔 보는 것보다
중도 포기가 빠르다.
있으면
편하겠다, 좋겠다 싶은 물건이라도
결제 직전에
창을 닫아버리기 일쑤다.
생각해 보면
'그거 없이도 지금껏 잘 살았다'가
나의 논리다.
need 인가 want 인가
꽤나 따지는 편이다.
직업란에
가정주부를 적는 입장으로서
그 따지는 기준은 다른 식구들보다
스스로에게 더 엄격하기에
'굳이'라는 두 글자로
고민을 종료시킨다.
그래도 사람인지라
중간중간
이걸 need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want라 해야 할지
보류되는 경우가 있다.
지금이 그런 경우였다.
대상은 랩탑 컴퓨터.
이거 하나 면
천군만마라는 생각이 든다.
한글 수업 때
이것저것 자료 챙기느라
보부상처럼 다니지 않아도 되겠고
시청각 자료도
바로바로 보여줄 수 있겠고
온라인으로
수업을 할 수도 있겠다 싶고 말이지.
이런 날은 need가 된다.
근데
또 이거 없다고
못하는 건 아니잖아?
여태 모은 자료를
이제 안 쓸 것도 아니고
시청각이야 뭐
오래된 아이패드가 느려터지긴 했어도
고장 난 건 아니니까
온라인 수업?
그건 데스크탑에서 하면 되지
뭐가 문제야
이런 날은 want가 된다.
뭔가 한 가지 이유가 더 필요했다
51 대 49로 만들어 줄 그런 뭔가 가.
그리고
그 답은 가까이에서 찾았다.
바로 글쓰기.
핸드폰으로
블로그나 브런치를 들여다보느라
정말 눈이 빠질 것만 같았다.
안 그래도 노안이 빨리 와 불편했는데
이제 괴롭기까지 하다.
글을 쓸 땐
또 그 코딱지만 한 자판을 두드리다
아주 그냥 오타가 작렬을 하신다.
속에서 주전자가 끓어오르지만
거실과 주방을 왔다 갔다 하며
슬쩍슬쩍 하는 포스팅이라
테스크탑은
아무래도 접근도가 떨어진다
게다가
한국에서 가져온 컴퓨터라
전압기 돌아가는 소리가
나중엔 이명으로 들릴 지경이다.
엥~~~~~~~~~~~
남편의
멋들어진 데스크탑이 있긴 하다
하지만 2층에 있는 데다가
나의 글짓기 세상을 모르는 사람인지라
흔적을 남기는 건 위험하다.
그러다
때는 바야흐로 블랙프라이데이.
남편이 불렀다.
가 보니
아마존에 눈여겨보았던 랩탑이
화면 가득히 떠있더라.
솔깃한 문구들은 다 적혀 있었다.
블랙프라이데이 한정!
빅세일!
사상 최저가!
오늘 단 하루!
눈알이 화면을 살피기 바빠
입을 떼지 못하고 있던 때
뽐뿌질이 시작됐다.
이거 최저가 맞는 거 같은데
그냥 사서 써봐~
사고 싶어 했잖아
이럴 때 사는 거지 머
달콤하다
속으로는
잘한다 잘한다 하며
더해라 더해라 한다.
주문 버튼 아래에는
남은 시간이
째깍째깍 흐르고 있더라
사람 쫄리게 말이지.
마른 입술에
침을 발라가며 손을 비벼댄다.
어쩌지 어쩌지 하는데
남편은 이미 장바구니에 넣고
마지막 결제 버튼만을 남긴 채
날 쳐다봤다.
딸깍
긴 시간의 고민은 1초 만에 종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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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
다다다다다다...
넌 이제 평생 나와 함께다!
남편의 도움으로
착착착 세팅을 끝냈다.
이게 내 거라니~
나도 이제 이런 걸 쓴다니~~
이 세상 태어나
처음 가져보는 랩탑이라며
잠시 의미 부여 시간을 갖는다.
지금 이 글?
노안 때문에
맞춘 안경을 쓸 필요 없이
오타를 지우느라
손가락에 쥐가 날 필요 없이
작은 화면 들여다보느라
눈물 흘릴 필요 없이
새 랩탑으로 적고 있는 첫 글이다.
이제, 슬슬
브런치북도 뛰어들 때가 왔구만.
내 1인 다방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는 지금.
이 느낌은 마치
멋진 커리어 우먼이 된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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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족구두 또각또각 신고
빌딩 숲 사이에 있는
커피숍으로 들어간다.
시럽도 크림도 넣지 않은
진한 블랙 한 잔을 주문하고
팔짱을 낀 채 삐딱하게 선 자세로
커피를 기다린다.
하얀 테이크아웃 종이컵에
빨간 립스틱 도장을 찍어가며
오피스로 컴백.
재킷은 벗고
셔츠의 팔은 훌훌 걷어 올리며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는 랩탑을 두드리는 거지.
중간중간 흘러내리는 뿔테안경 옆을
손으로
살짝살짝 밀어 올리면서 말이야.
탁탁 타다닥
"미팅 시작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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