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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냄새의 추억
by
블레스미
Dec 6. 2024
미국에서 지내는 긴 시간 동안
매번 한국의 명절에 맞춰 음식을 해 먹었었다.
여긴
그냥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평일일 뿐인데
한 번도 빠짐없이 말이다.
회사도 가고 학교도 가야 하는
아무런 감흥 없는 그런 평일이지만
혼자 명절의 그 냄새를 만들었던 것이다.
지글지글거리면서
풍겨내는 고소한 기름냄새는
나를 한국의 그 어떤 때로 데려가는 듯했다.
외로운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육체가 열심히도 노력했던 때였다.
더불어,
이곳에서 친척이나 사촌 형제 하나 없이
독고다이로 커 가고 있는 아이들이 딱했다.
어릴 때 여러 감정의 교류를 겪어야 하는데
그 기회를 갖지 못하고
오로지 엄마 아니면 아빠, 아빠 아니면 엄마...
명절이라는 이벤트가 머릿속엔 없더라도
'우리 그랬었는데~' 하며 가슴속엔 남으라고
음식이라도 똑같이 해 먹자 싶었던 거다.
그러다가
미국에 완전히 남기로 결정 한 이후
나는 더 이상 명절 냄새를 만들어 내지 않았다.
의도하거나 작정을 한 건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그냥 그냥 그렇게 흘러가더라.
나는 내가 지쳤다고 생각했다.
밥 해 먹는 거에 질려서
이젠 음식 해 먹는 게 귀찮아졌구나 했었던 거다.
그런데 지금 와서 가만 생각해 보니
그 감정은 마치...
돌아가신 부모님 사진을 머리맡에 두고
아침저녁으로 인사를 하고
그리움이든 사랑이든 원망이든
울고 웃으며 충분히 표현하고 살다가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
이런다고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언제까지 사진 들여다보며
말랑하게 살래?'
현실을 받아들이고
현실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사진은 서랍 속에 넣어 두고
단단한 마음 꾹 삼키며
덤덤하게 담담하게
내일을 살기로 결정하는 모습이랄까.
맞는 거 같다.
그런데
알아내고 나니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니네
.
.
.
.
.
.
.
.
.
저녁 메뉴를 묻는 남편에게
오랜만에 기름이나 먹어보자 했다.
식탁에
마트 세일 광고지를 빽빽하게 깔고
가스버너를 올려 세팅했다.
낮에 불려놓은 녹두를 갈아 놓고
씻은 김치와 숙주나물,
돼지고기를 넣어 반죽을 완성.
이것만 먹으면 섭섭하지~~
밑간 한 돼지고기 다짐육에
청양고추 다져 넣고
반죽해서 그 옆에 대기시켰다.
못난이만 남았네
다 먹고 겨우 이거 남음.
지글지글 이 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 소리인지
고소한 기름 냄새가
온 집안에 퍼지고 퍼지자
뭔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술 한 잔 들이켜고 녹두전, 고기전
한 입 씩 베어 물어 눈을 감고 씹으니
영락없이 그 어느 때의 그 순간이더라.
이로써 오늘은 웰컴 투 광장시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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