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엄마 성적표
by
블레스미
Dec 5. 2024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난 그들의 영웅이었고
하늘이었고 땅이었고 우주였고 전부였다.
그랬던 아이들은
나와 눈높이를 나란히 할 만큼 자라더니
사춘기라는 터널을 지나고 있다.
장난기가 넘치던 아이는 수줍어졌고
재잘거리던 아이는 목소리를 잃어버렸으며
어디든 따라붙던 아이는 방콕으로 떠나버렸다.
말 한마디에 어찌나 예민하게 반응하는지
별뜻 없던 나의 말들은
별 뜻이 가득한 말로 바뀌어 버리고
기분의 업 다운이 커지니
부딪히는 횟수도 늘어났다.
내 이토록
눈치를 보던 때가 있었던가
굴욕적이었던 때가 있었던가
비위를 맞추던 때가 있었던가
비굴하게 굴던 적이 있었던가
쭈구리였던 적이 있었던가
.
.
.
.
.
.
존경한다, 롤 모델이다
이런 소리 들어가며
강의실에서 카리스마 뽐내던
나는 어디 간 거냐.
내 아무리 잘났어도
우리 집 아이들에겐 그냥 '엄마' 다.
특별한 것도 없고 잘나 보이지도 않는
그냥 평범한 '엄마'
다행히
저 멀리 빛이 보이는 터널의 끝 지점까지
온 듯하다.
큰 아이가 학교에서 과제로 글을 썼다며
나에게 내민다.
"이거 엄마 얘기야"
뭔 소린가 싶어 찬찬히 읽어보니
우리 엄마는
슬픈 때나 기쁠 때 가장 힘이 되는 사람
나보다도 더 나를 잘 알고 있는 사람
그래서 고맙고 좋다는 그런 이야기.
어머나..
읽자마자
싸우고 혼냈던 지난날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내가 더 품었어야 하는 것을
같이 맞서서
똑같이 행동했구나 싶어 미안했고
내 진심을
알고 있긴 했구나 싶어 고마웠다.
그동안
할퀴어진 자리를
이 종이 한 장이 반창고가 되어
덮어주는 기분이었다.
keyword
엄마
아이
사춘기
16
댓글
2
댓글
2
댓글 더보기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블레스미
소속
외국어로서의한국어
직업
교사
비서, 승무원, 강사, 교수의 타이틀이 있던 삶이었습니다. 미국 이주 후, 한국어를 가르치며 초기화 된 제 인생을 스스로 구하는 중 입니다.
구독자
34
제안하기
구독
작가의 이전글
하얀 손길
기름 냄새의 추억
작가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