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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성적표

by 블레스미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난 그들의 영웅이었고

하늘이었고 땅이었고 우주였고 전부였다.





그랬던 아이들은

나와 눈높이를 나란히 할 만큼 자라더니

사춘기라는 터널을 지나고 있다.





장난기가 넘치던 아이는 수줍어졌고

재잘거리던 아이는 목소리를 잃어버렸으며

어디든 따라붙던 아이는 방콕으로 떠나버렸다.

말 한마디에 어찌나 예민하게 반응하는지

별뜻 없던 나의 말들은

별 뜻이 가득한 말로 바뀌어 버리고

기분의 업 다운이 커지니

부딪히는 횟수도 늘어났다.





내 이토록





눈치를 보던 때가 있었던가

굴욕적이었던 때가 있었던가

비위를 맞추던 때가 있었던가

비굴하게 굴던 적이 있었던가

쭈구리였던 적이 있었던가

.

.

.

.

.

.


존경한다, 롤 모델이다

이런 소리 들어가며

강의실에서 카리스마 뽐내던

나는 어디 간 거냐.





내 아무리 잘났어도

우리 집 아이들에겐 그냥 '엄마' 다.

특별한 것도 없고 잘나 보이지도 않는

그냥 평범한 '엄마'





다행히

저 멀리 빛이 보이는 터널의 끝 지점까지

온 듯하다.





큰 아이가 학교에서 과제로 글을 썼다며

나에게 내민다.





"이거 엄마 얘기야"





뭔 소린가 싶어 찬찬히 읽어보니










우리 엄마는

슬픈 때나 기쁠 때 가장 힘이 되는 사람

나보다도 더 나를 잘 알고 있는 사람

그래서 고맙고 좋다는 그런 이야기.





어머나..





읽자마자

싸우고 혼냈던 지난날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내가 더 품었어야 하는 것을

같이 맞서서

똑같이 행동했구나 싶어 미안했고

내 진심을

알고 있긴 했구나 싶어 고마웠다.

그동안

할퀴어진 자리를

이 종이 한 장이 반창고가 되어

덮어주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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