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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손길
by
블레스미
Dec 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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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그 난리통의 대가는
이곳에서도 치러야 했다.
남편은
출근해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의 질문에
맞서야 했기 때문이다.
회사 사람들은
너네 나라 무슨 일이냐며
괜찮은 거냐 왜 그런 거냐
질문을 쏟아 냈다고 한다.
뭐라고 했는지 궁금해하는 나에게
씩 웃어 보이더니
이럴 줄 알고
전 날 챗 gpt를 이용해
이 상황을
모두 정리해 갔다고.
평생
절대 알 필요 없었을
온갖 정치 용어들을 벼락치기 했다며
그 여운을 좔좔 쏟아 냈다.
그냥
그 질문들에
짧게 '별거 아냐' 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뭔지 모를 사명감에 불타올라
민간 외교관으로서
한국 대변인으로서
가만있을 순 없었던 거다.
남편의 대답으로
이 사람들의 머릿속엔
한국이 지어 올려질 테니 말이다.
우리 또 그런 건 못 보는 한국인이잖아?!
국제 브리핑 저리 가라를 하고 온 거다.
하.. 내일 것도 준비해야겠네
끊임없이 쏟아지는
새로운 소식들에
남편은 잠들기 전
내일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업데이트를 대비했다.
하여튼
그 안의 사람이나 밖의 사람이나
여러 가지들로 고생이다.
하필이면
지금 이때에 아이들 학교에선
인문지리학 시간에
K pop의 역사와 영향력에 대한
수업이 이뤄지고 있는 참이다.
아직도
한국이 어딨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게 현실인데
이런 주제로 수업이 이뤄진다는 건
그만큼
문화현상으로서 연구 가치가 있고
그 영향력이 크다는 뜻인 거다.
반 친구들이
한국 영상 자료들을
영어 자막으로 보는 동안에
팔짱 끼고 앉아
한국어 원어민으로서
뿜뿜하고 왔다고 말하는 아이들은
어깨가 5센티쯤 높아져 있었다.
너네도
아빠 하는 거 같이 준비 해야겠다야~
이때에 사건이 터져버렸으니
질문의 화살이
아이들에게도 쏟아질까 싶어
농담반 진담 반으로
나온 말이었다.
일은 저~쪽에서 났는데
기자회견은 왜 우리가 하고 있대니
.
.
.
.
.
.
.
.
.
.
자고 일어나니
왜 이렇게 밝지??
늦잠을 잤나
어딘가 불을 켜놓고 잤나
부엌으로 내려가 불을 켜보곤
그제야 알았다.
밤새 눈이 왔네!!!!!!!!
내가 사는 곳은 미국 동남부 쪽.
한국처럼 4 개절 있고
그 온도도 비슷한 곳이다.
다만 겨울은
한국의 11월 말 정도의 추위가
전부다.
그러다 보니
눈을 보는 경우가 드물다.
그래서 1센티만 쌓여도
제설에 재주가 없어
모든 것이 마비된다.
회사도 학교도 문을 닫고
고속도로는 차단될 정도.
어젯밤 내린 눈은
그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지만
4년 만에 내린 반가운 눈이었다.
아스팔트 위는 다 녹아졌지만
잔디밭 위엔
포송포송하게 깔리었더라.
어제
그 난리통을 주시더니
미안했는지
하얗게 깨끗하게 덮어 주셨네.
2층에서 내려다 본 뒷마당
햇빛에 눈이 녹아드는 게 아쉬워
뒷마당에서 혼자 사부작사부작 거렸다.
발 도장도 찍어보고
나무에 쌓아 올려진 눈도
흔들어 보고.
작은 눈사람도 탄생시킨다.
안 그래도 조용한 동네였지만
오늘 더욱이 고요해진 느낌이다.
하얀 가운 걸친 의사쌤이
내가 사는 곳에 내려앉으시니
가슴이 두근거렸던 지난밤은 싹 가신다.
아수라장이 돼버린 지구 반대편에도
이 깨끗함이 가 닿기를
이 고요함이 흐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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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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