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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 낼 결심
by
블레스미
Dec 19. 2024
내 인생의 장르는 옴니버스다.
각각의 단편들은
다른 이들의 것과 비교했을 때
독창성, 고유성, 차별성의 기준에서
별 다섯 개를 먹을 만하다고 본다.
상영시간?
화장실을 미리 다녀와야 함은 물론이고
보는 내내
음료는 마시지 않는 게 좋을 거다.
퀄리티?
둘이 보다
하나가 죽어도 모르지 않을까?!
단편 하나를
인생 1회 차로 본다면
나는 도대체 환생을 몇 번 한 걸까.
매 회 차
직업, 나이, 분장, 배경, 주변 인물
그리고 사건들은 모두 다르지만
언제나 주인공은 나다.
해피엔딩을 꿈꾸며 고군분투하는
1인 옴니버스.
야, 넌 그래도
여러 가지 별거 다 하면서 살잖아~
별로.
노 땡큐야.
남들은 평생 모르고 살 일들을
나 혼자 다 겪고 있어
난 왜 이러는 거야?
어?
왜 이러는 거냐구.
겪지 않아도 될 일까지 겪고 있다 정말
좋아 보이면 너 할래?
어??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누구 것과 견주어 보았을 때
다이나믹 기준으로
평가를 한다면
결코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사십 대 사이에선 내가 짱 먹고
국대도 노려 볼 만한
이력이지 않을까.
이런 걸 자랑이라고 참...
아, 이 글 바닥에서는
자랑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적 일들은
아직
건드릴 때가 아닌 거 같다.
영화는 끝이 났지만
그 기분과 잔상의 여파가
계속 현제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제목만 들어도
OST만 들어도
나를 그때의 그 순간으로
데려가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일단
내 인생 절반은 덮는다 쳐도
내 이야기 곳간은 풍년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 나서부터
내 인생은
3년을 주기로 돌아가는 모습이다.
아이들이 태어나
만으로 3살이 됐을 때
미국으로 와야 했다.
거기서 3년 후 다시 한국
ㅣ
한국에서 3년 후 다시 미국
ㅣ
미국 그곳에서 3년 후
미국 내 다른 도시
ㅣ
또 그 도시에서 3년 후
도시 내 다른 동네
이게 올 해다.
빚쟁이 도망 다니는 것도 아니고
3년마다
도서관에서 메뚜기 뛰기를 하듯
꾸준히도 옮겨 다닌 게
신기하기도 하고
왜 이러나 싶기도 하다.
그 덕에라고 해야 할지
그 때문에라고 해야 할지
너무도 많은 일
많은 사람
많은 희로애락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 정도라면
내가 쓰지 못할 장르의 소설은
내가 찍지 못할 장르의 영화는
없지 않나.
내년엔
이것들을 하나하나 풀어 볼까 하는데..
다만,
좋은 일이면
자랑이라도 하겠지만
그냥 묻고 넘기자
이젠 다 추억이다 하는
이야깃거리들이 많은지라
빗장을 풀기가 여간 쉽지 않다.
어젯밤
남편과 넷플릭스에 있는 영화를 봤다.
실존한 유명 인물의 실화라고 했다.
처음엔
잘못 골랐다 싶은 방향으로
흐르더니만
이걸 고른 게 하늘의 계시인가 싶더라.
그녀는
마주하기 힘든 과거의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고 있었다.
자신이 아니면 하지 못할
지난 이야기들을
지금이 아니면 하지 못할
지난 이야기들을
괴롭지만
피하지 않았고
물러서지 않았다.
꾸역꾸역 삼키지 않았고
조근조근 뱉어내고 있었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를 위해서라면
더욱더
밖으로 끄집어내야 한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는 그녀였다.
입 밖으로 끄집어내야
그 공간만큼
내가 숨을 쉴 수 있으니까
세월이 많이 지났어.
이제 그 문을 닫아.
아니,
시작으로 끝맺음을 할 거야.
나 보라는 듯
화면 속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그 장면은
오늘 하루 종일 내 가슴속에서
반복 재생 중이고
그 대사는
내 입에서 반복 재생 중이다.
그러더니
이제는
온전히 그녀가 돼버린 기분이다.
내 마음에
쓰레기를 버리고 간 사람들에 대해
지금까지 긴 시간 동안 생각하고 살았다.
아니,
생각이 되어져 왔다가 맞는 말이다.
그 생각의 끝은
한결같이 욕이었지.
욕을 한 바가지 퍼부어도
시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반복 또 반복.
어제 영화를 보고 나니
머릿속에 뭔가 까슬한 게 잡힌다.
이게 뭐지 싶어
손톱으로 살살 긁어내니
손으로 집을 수 있을 만큼
모습을 드러내더라.
엄지와 검지로
그 꼬투리를 잡아당겼다.
그랬더니
쑤욱하고 엄청나게 크고 긴 것이
한순간에 빨려 나왔다.
그것이 나오느라
작던 구멍은 커졌지만
퉁퉁 부어있던 머릿속은
푹 가라앉아 말랑해졌다.
얽히고설킨 그것을
찬찬히 살펴보니
분노, 저주, 원망 그리고 자책
괴로움, 자괴감, 피해의식.
그 순간 아주 잠시 일시정지
그러고는
아.. 맞네.. 맞아...
어느 순간부터
내 맘에 쓰레기를 던진 자들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었던 거다
내 마음속 쓰레기가 썩어
악취 나는 감정이
문제였던 거지.
이미 던지고 저 멀리 간 사람
욕해봤자 뭐 해
다시 와서 치우겠어?
없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냥
어쩔 수 없었다 치고
얼른 집어다가
밖으로 다시 내 던지는 게 더 빨라.
그 감정과 나와의 싸움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니
가
이런 걸
누구한테 말할 수 있을 거 같애?
니 얼굴에 침 뱉는 거야
그러니까
그냥 가만히 있어
나대지 말고.
감정이 주는
핀잔에
자신있게 대답한다.
있잖아,
니가 문제라는거
내가 지금 딱 알겠거든?
수작 부리지 말고 기다려
내가 널 하나씩 조져줄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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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 승무원, 강사, 교수의 타이틀이 있던 삶이었습니다. 미국 이주 후, 한국어를 가르치며 초기화 된 제 인생을 스스로 구하는 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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