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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함의 시발점

by 블레스미

원래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음을
양심선언한다.




내 방은 항상
누군가가 급히 탈출을 했나 싶은
꼴이었으며




엄마는 항상
도둑이 든 거냐
이사를 가는 거냐 물었다.




내일 치우자,
나중에 정리하자며
스스로와 타협하는 생활이 이어지니
공간이 있다 싶으면
그곳엔 항상
무언가가 쌓여 올려져
탑을 이루었지




그 앞에
손을 비비며
소원을 빌어도 될 판.




그래도
그 어지럽혀짐 속엔
나름의 규칙과 질서가 있었기에
필요한 걸 찾아내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반복이었던 거고
불편함이 없었던 거지




책상이나
화장대 위 물건들은
손이 자주 가는 거 빼곤
뿌연 색을 지니고 있었다.




먼지라는 아이와 공존했거든




날을 잡고 치우기도 했다.




그래,
날을 잡아야 했다.




쓰레기통을
옆에 두고
한참을 속아내다 보면
유물이
한가득이었고
아 이게 여기 있었네 하며
찾은 보물이
한가득이었다.




제일 기뻤던 순간?
당연히
돈이 발견되는 순간.




그때의 나를
칭찬하기까지 하는
기쁨이었다.




그렇게
쓸고 닦고 버리고를 거치니
다이어트에 성공한
늘씬한 아이가 되었네.




하지만
우리 모두 알잖아?
이거 이거
오래 못 간다는 거~~




홀쭉해진 뱃속에다가
야식에 인스턴트에
고칼로리를 집어넣기 시작하니
늘씬한 차도녀는 어디로 가고
눈에 익은
그 후덕한 아가씨가
들어앉아 있게 되는 거지.




이제는
요요가 겁나서
다이어트도 생각 않게 되는
도루묵이다.




그랬던 내가...
그랬던 내가!!!




오와 열이 맞지 않으면
보기 불편하다.
각이 맞지 않으면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노안으로 침침하고
분간을 못하는 와중에도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은
귀신같이 찾아낸다.




그리고
그렇게 머리카락이 눈에 띄는 순간
온 집안의 바닥이
더럽다 느껴져서
청소기를 둘러댄다.




먼지를 매일 닦진 않는다.
그 대신
선반이나 테이블 위에
자잘한 것들을 올리지 않지.




그러면
다이슨에 헤드만 바꿔서
쓱 밀어버리고
한 큐에 끝낼 수 있거든.




아침마다
침대 이불 정리는 당연한 거고
소파에 쿠션과 무릎담요도
가지런해야 한다.




당연히
이제는
누워있는 옷들은 없다.
깔 별로 종류별로
옷걸이에 걸려서
대롱대롱




부엌은
위생이 요구되는 곳이니
좀 더 타이트하게
관리하는 편이다.




냉장고 속이나
펜트리도
크기와 종류에 맞춰
보관되어야 하고
이왕이면
상표가 보이도록 줄을 맞춘다.




그래야
무슨 맛인지
한 번에 고를 수 있고
어떤 물건인지
한 번에 찾을 수 있기에
어지럽히지 않을 테니까.




읽는 동안 힘들었다고...?
어, 나도 힘들어..!




근데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내 마음이 더 힘들다.




원래 이게 아니었는데
이렇게 까지는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보니
이 지경이 됐다.



병인가...?




중요한 건
이 집은
나 혼자 사는 곳이
아니라는 거지




나머지
3인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거지




이제는 다들
내 스타일을 알기에
군말 없이
협조하고 있으며
전염이 되어가고 있다.




귀찮다며
불평하던 아이들이
점점 커서
다른 집에도 가보고 하더니
이제는 잔말이 없다.




지들 눈에도
이게 맞다 싶은 아니겠어?




1월 1일이니
새해 새 날답게
시작하고 싶었다.




각 방의 침구들을
죄다 빨고
무릎 담요들도
싹 다 빨았다.




소파도
다이슨 헤드를 바꿔
구석구석 문질러 대고




부엌 싱크 상판과
후드, 가스를 싹싹 닦았다.
냉장고에 오븐에
식세기까지 문질 문질




삘 받아서 하다 보니
아이구 소리가 나온다.
그런데
마음은
이리 좋을 수가 없네




평안하고 평온하다.




밥 한 번 하고 나면
또 도루묵이 되겠지만
이 순간 천국이다.




묵은 때 벗기고
새해를 시작한다는 생각에
후련하고 상쾌하고.



정신 없는

그지 소굴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내가

이리 될 줄은 몰랐네
정말 꿈에도 몰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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