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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일지

by 블레스미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참..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니
그 정해진 양만
잘 채우면 될 일이었다.




근데
말은 쉽다는 거 알지?




왜냐하면 나도 사람이니까.




어제저녁쯤부터
비실비실 꼴이 나기 시작했다.





건드는 사람이 있던 건 아니었고
안 풀리는 일이 있거나
걱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슬슬 요상하게 기분이 안 좋다.
뭔가에 대해
화가 울컥울컥 올라오는 상태.




핸드폰 달력을 보니
식모 살이 3주째구나.
이거였네





내 귀차니즘이
식욕을 이긴 사람이다.
귀찮아서 안 먹는 사람이
나란 말씀.




게다가
원래 아침을 안 먹는 사람인지라
가만있으면
오후 1시까지도 가더라.




공복에 유산소?
가능하다.
공복에 근력?
그것도 가능하던데.




물론
이러다 보니
저녁에 터지기도 하지만
다음날까지
간헐적 단식이 이뤄지는 꼴이니
문제로 인식되지 않고 반복이다.




아,
나이 먹을수록
먹은 거 없이 배가 나오는 건
문제로 인식 중이다.




평일 낮엔
내 입만 해결하면 되기에
간단히 먹고 끝낸다.




스스로를 대접하는 의미로
예쁜 그릇을 꺼내
이갓 저것 담고 자시고 하던데
난 그쪽도 아니다.




나에겐
설거지를 줄이는 게
나를 대접하고 위하는 거 거든




그런데
나머지 3인이
함께하는 식탁이면
얘기가 달라진다.




기본 반찬이 3개는 깔리고
메인스럽다 하는 아이를
가운데에 껴 줘야 마음이 편하다.




마땅치 않다고?
냉장고에 꺼낼 만한 건
일단 다 꺼내
각각 접시에 담는다.




먹든 안 먹든
그건 그들의 선택
일단 나는 차린다.




금요일이 되면
좀 달라야 하지 않나 싶어
조금 더 신경을 쓴다.




힘들다면서
왜 이렇게 하냐고?




자기 방어라고나 할까





하루 종일 집에 있는다고 해서
놀고 자빠져 있는 거 아냐

너희만
학교니 회사니 바쁘게 사는 거 아냐


그런 직무유기 베짱이 아냐




그리고
사회생활도 해 본 입장으로서
내가 퇴근하고 돌아오면
나를 반겨주는 음식이
차려져 있으면 좋겠다
생각된다.



내가 남자라면
나를 그렇게 반겨주는 게
나를 존중해 주고
내 수고를
인정해 주는 모습으로
받아들일 거 같거든





특히나
금요일이 되면
뭔가 특식을 원하게 되잖아.




그런 저런 이유로
이날 이때까지
차려 먹고살았는데
이제 슬슬 온다 와.




아이들이 대학을 가면
그땐 나도 퇴직이야





세상에..
이런 사람이
클스 연휴 3주 동안
삼시 세끼를 차리고 있으니
우울해 안 해?!




게다가
날마다 또 어디 나갈 일은
왜 자꾸 생기니??!!




내 할 일 사부작대다가
내 시간 꼼지락대다가
밥때가 된다 싶으면
동작 그만




난 먹고 싶지도 않은데
배고프지도 않은데
부엌 앞으로 전진




우리 집 1층 부엌 뒤 쪽으로
게스트룸이 있다.
남편에게
그곳을 가리키며 말했지




나 저기에 처박히고 싶어.
나 좀 처 박아 주면 안 돼?




힘들어할 때마다
나가서 먹을까?, 사 먹을까?
하는 남편이다




하지만 그 돈이면...
이라는 생각이 따라붙으니
요지부동이다.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 하니
보는 사람도 답답하겠지
나도 이런 내가 시르네.




어제
여느 가정집의 일요일답게
늦은 오후면 찾아오는 낮잠에
빠져 있는 식구들.




나도
졸음이 몰려오는 그 와중에
정신줄을 잡는다




지금 일어나지 않으면
밥이 늦어지고
치우는 게 늦어지고
내 자유시간도 늦어지는 법.




나를 위해
겨우겨우 몸을 일으키는데
드는 생각 하나.




내가 군인이냐.




왜~
군인들이 그 말하잖아




내 가족이 잠든 사이에
나라는 내가 지킨다고.
나 믿고 편히 주무시라고.




식구들 낮잠 자는 사이에
밥은 내가 지키는구나.
개운히 자고 일어나면
밥이 떠억 하니 차려져 있을 테니
걱정 1도 없이 편히 자네




나만 사경을 헤매며 일어나
부엌에 보초를 섰다.




하... 내일 학교 가야 돼...




어,
어서 가 이제.
이제 그만 가야 돼
가, 가, 어여가




지금?
월요일 아침 6시 1분.
밤인지 낮인지
아직 창밖은 깜깜하다.




불을 켜고 앉았는데
창문에 비치는 사람은
나 하나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핳ㅎ하핳




해가 뜨기도 전에
모두를 내 보내고
드. 디. 어.
혼자다.




이 얼마 만에 가져보는
적막함, 한가함이냐!
하루아침에 딴 세상이 됐다.




비가 내리고 있어
하루 종일 흐릴 예정이지만
시작을
이리 차분하게 하는 것도 좋지
갑자기 솟구치면 쓰러져~




내 맘속엔
해님이 반짝 떠올라
맑고 상쾌하고
눈이 부시는 아침이다.




커피 한 잔 가득 담아서
창문에 비친 나에게 치얼스.







나도 나 같은 아내가 있음 좋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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