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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 휴가
by
블레스미
Jan 15. 2025
남편은 출장 중이다.
예전에
우리가 살던
그 눈의 나라로 떠났다.
이른 시간에
출발하는 비행기라서
새벽 3시에
일어나야 한다고 하길래
그럴 거면
뭐 하러 자냐고 했지
자는 게 더 피곤하겠다고
티비나 보고 놀자고.
아무리
24시간 돌아가는 공항이라지만
도대체
그 시간에
비행기는 누가 띄우는 건데?!
승무원 시절,
아침형 인간과는
거리가 멀고 먼 나에게
새벽 쇼업이 있는 날은
전날부터
부담감이 한가득이었다.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일찍 누워보지만
이것저것 잡생각에
의식은 더 또렷해지고
그러다 보니
갑자기 생각난
이러저러한 일들을 챙기러
이불을 다시 걷어내기를 반복.
그리고
다시 누워서는
뚝 뚝 훌쩍 가버리는 시간에 쫓겨
자야 해! 자야 해!!!
하지만
잠이 올 리가요..
잔 것도 아니고
안 잔 것도 아닌 상태로
출근이었지.
지금도
가끔
남편이 묻는다.
아니, 이렇게 자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비행은 도대체 어떻게 한 거냐고
지각 하나에 잘린다고 생각해 봐
나처럼 목숨 걸고 일어나지.
그래..
그 새벽 비행기
내가 띄웠더랬다...
지금 생각해도
참..
그걸 8년 동안
어떻게 했나 몰라
지난 3주간을
4인 1조로 지냈던 터라
이번 출장을 내심 기다렸다.
일단
밥상이 간소해질 예정이니
부엌에서
벌서고 있는 시간은 줄고
설거지도 줄고.
내 시간은 늘고
마음의 여유도 늘고.
사람들이
그런 말 하더라
밥때에
손님이나 누가 오면
아유~~
숟가락만 하나 더 놓으면 되는데요 뭐~~
내 생각에
그건 그짓말이야
ㅎㅎㅎㅎ
그 말은 그냥
반갑다,
미안해 말아라의 뜻 일뿐.
밥상에
입 하나 줄이는 게
얼마나 큰일인지를 내가 아는데???
하물며 손님 입인데?????????
어젯밤
잘 준비를
일찌감치 끝마치고
랩탑과 와인을 주섬주섬 챙겨
방으로 올라갔다.
자,
이제 넷플릭스 타임!
널찍한 킹 베드 한 중간에
엉망으로 자리를 잡고 누워
와인 담은 미니 텀블러에
빨래를 꽃아 홀짝이며
미리 골라 둔 영화를
플레이시켰다.
처음엔
혼자 컴컴한 밤까지
거실에서 사부작 대는 것도 별로고
그렇다고 해서
일찍 자는 건 더 별로라
침대에서 뒹굴거리기나 하자
하면서 시작했던
잠들기 전의
잉여 타임이었는데
이제 더 이상
그러기나 하자 식의
킬링 타임이 아니다.
출장이 잡혔다는 말을 들으면
그때부터
넷플릭스에 뭐가 있나 하면서
룰루랄라 고르고 있는 나.
어떤 기분이냐면
너무 뜨겁지 않은 여름
리조트 야외 풀장 썬 베드에
누워 있는 거지
그 풀장 앞엔
에메랄드빛 잔잔한 바다가
쫙 펼쳐지고 말이야.
한가로운 분위기에
흥이 나는
라틴음악은 깔려 흐르고
내 손엔
스벅 벤티 사이즈 보다 큰
칵테일이 들려 있어.
난
큰 비치백에
핸드폰, 책, 랩탑에 다이어리까지
바리바리 싸 들고 와서
이것저것 사부작 사부작대다가
살랑살랑 불어 주는 바람에
최면이 걸리기 시작하는 거야.
그럼
가방에 어떻게 넣어왔나 싶을 만큼
커다란
비치 모자를 내려쓰고
잠깐 눈 좀 감아보자 하지.
딱 그 기분이었다.
비록
현실을 방구석이었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나 혼자,
내 시간,
내 여유를 떨고 있다는 게
포인트였지.
그리고
그 기분은 마치
에메랄드빛 바다로
휴가를 떠난 사람과 같았다는 것
오늘 아침
꾸역꾸역 일어나긴 했더랬다.
파도 소리에
늦잠 자고 일어난 거 아니었고
1층 식당에
근사하게 차려진
무료 조식이
나를 기다린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 마음은 휴가 중
아직
집으로 돌아가려면
네 번의 밤이 남아 있는 걸!
오늘 밤도
커다란 비치백 들쳐 매고
내 마음속 휴가를 즐길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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