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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들, 아시아나

by 블레스미

쉬는 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한 곳으로
벌 때처럼 모여들었다.




반 친구 누군가가
학교에
잡지를 가지고 온 것이었다.




바깥세상에 나가면
널리고 널린 게 잡지였지만
성역에 나타난 금기물은
언제나 빛을 발하는 법이지.




겹겹이 쌓인
뒤통수들을 피해
한쪽 눈을 들이밀었던 그 찰나
잡지 속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갑자기
슬로 모션으로 전환되면서
심장이 두근두근
수업 시간 내내
그녀의 미소만 떠올랐더랬다.




안 되겠다 싶어서
친하지도 않은
그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다정하게 다가갔지.




누구야~~
나 이거 한 장만 찢어 주면 안 돼?




이거? 그래!




단칼에 쫙 찢어주더라.




내가 가리킨 페이지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화장품이나 옷가지들이
실려있던 면도 아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본다.




고맙다는 인사를 연거푸 하며
받아 든 종이가 구겨질세라
두 손바닥으로
종이를 가슴에 밀착시킨 채
자리로 사라락 돌아왔지.




집으로 돌아와
조심조심 꺼내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회갈색 유니폼에
색동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고상해 보이는 쪽 머리에
빨간 립스틱을 바른 그녀가
활짝 웃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아시아나.




얼굴이
잘 보이도록 접고 접어서
가지고 있던 작은 수첩에
끼워 넣었다.




그 당시
승무원이 되겠다고 하는 건
미스코리아를 나가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폭탄 발언이었기에
손가락질당하고 싶지 않아
수첩 안쪽에
나만 볼 수 있도록
그녀를 숨겨 두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대학 졸업이 코앞이었지만
911 테러의 여파로
몇 년 동안
항공사 공채가 뜨지 않는
암흑기였기에
다른 곳에
취업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는
면접 응시에
나이 제한이 있던 시절이라
이제 나에게 남은 시간은
6개월이었다.




항공사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딱 2개.




공채가
계속해서 없는 상황에
남은 시간은 6개월.




면접 기회조차
한 번 없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내가 그럼 그렇지..
헛웃음만.




마음속
바람을 빼느라 애쓰던
어느 날




공채가 떴다는 소식을 접했다.




6개월 조차
남지 않은 이 시점에
공채라니




정말
악 소리조차
낼 수 없을 정도로
눈물겹더라.




서류를 내고
면접 준비를
야금야금하고 있었다




어떻게?
부모님 몰래
친구들 몰래
다니던 회사를 다니면서





2년이 넘도록 없던
공채였던지라
경쟁률은
사상 최고치를 달성했다.




400;1




게다가
난 이제
자격 제한이
6개월 조차 남질 않았으니
이번 공채가
처음이자 마지막인 셈이다.




탈락하면
돌아갈 곳이 필요했고
나의 패배를
쥐도 새도 모르길 원했다.




난 왜 항상 이럴까..
젠장이었다.





서류
1차 면접
2차 면접
영어면접
신체, 체력 검사
총 5차의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발표 결과가
이메일로 올 때마다
손바닥으로 모니터 화면을 가리고
고개를 최대한 뒤로 내 빼
한쪽 눈으로
화면 옆 스크롤바를
제일 먼저 쳐다봤다.




스크롤바가 크다면
적힌 내용이 조금일 테니
불합격이란 뜻이고
스크롤바가 작다면
안내사항이 많다는 뜻이니
합격이리라.




희한했다.
면접을 마치고 나올 때마다
확신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까지
겪은 모든 일들을 통틀어 봤을 때
그때처럼
강한 확신을 느낀 일은
단 한 번 도 없다.




역시나
매번 작은 스크롤바를 확인했었지.




마지막
신체, 체력검사 때
약간의 이슈가 있었지만
최종 합격 메일을 받게 되었고
그제야
식구들에게 알리면서
이 전의 직장도 퇴사하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하게 되다니.




감격스러움으로
지난날이 모두 보상받는 기분이었고
좋아하시는 부모님 앞에
스스로 대견함이 넘쳐흘렀으며
내 두 어깨엔
자랑스러움이 얹어졌더랬다.




물론
다들 그렇겠지만
현실은 매우 다르더라




이런
빛 좋은 개살구가 또 있을까?
반복되는 현타 앞에서 버텨야 했다.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거라 생각했으니까.




쌍둥이를 낳고 복직도 했더랬다.
그렇게
나의 8년을 너와 함께 했지.




지난 1월 17일이
입사 20주년이었다.




이제는
전직으로 분류되지만
동기들에게 축하를 건넸다.




기수 장을 맡았던 입장으로서
함께 하지 못함이
너무나도 아쉽고 미안해
친한 동기에게
케이크 하나 보내주는 걸로
달래자 싶었는데
그걸 받은 동기가
고마워하니
더 미안해지는 이 기분은 뭐지..?




20년 동안
하늘을 지켜 온 동기들이다.




겉으로는
한없이 화려한 직업이지만
시차 그리고 외로움과 싸우며
현장 업무라는 고강도에 놓여
수고함에
박수를 보낸다.




우는 아이를 떼어 놓고,
아픈 가족을 뒤로하고,
가족 모두가 함께 하는
소중한 순간에
홀로 부재해야 하는
그 애씀에
존경을 보낸다.




축하해
얘들아~~~~
너무 멋지다 정말
너희가 최고야!





그리고....






안녕, 내 첫사랑.

잘 지내지?
여전히 넌 아름답더라
너와 함께한 8년은
나에게 기적이었어.

너무나도
찬란하고 아름답고
소중한 순간이었다.

너의 손을 놓게 되던 마지막 날은
지금도 떠올리지 못해.
생각하면 내 눈이 흐려지거든.

얼마 전 티브이 속에서 만난 넌
새로운 준비를 하고 있더라.

다른 식구를
가족으로 만나게 됐으니
아마 어색하고 어려울 거야

우리들만의 시간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거 같아
모두가 지켜보기 힘든 순간이지만

그래도

사랑받으며
더 많은 경험을 하게 될 테니
웃으며 보내 줘야 하겠지.

앞으로
시작되는 새로운 날이
행복으로 가득 차길 바랄게

다행이다, 잘 되었다는 말로
가득 차길 바랄게

그럼
우리의 추억도 행복도
영원히 이어질 수 있을 거 같다.



아름다운 사람들
아시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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