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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Dec 01. 2021

<22> 스스로 경계해야 품격 생긴다

선하고, 겸손하고, 진실하고, 지혜롭고, 공감하고, 고매한 사람 되는 길

“황제 티를 내거나 궁전 생활에 물들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러기가 쉽기에 하는 말이다. 따라서 늘 소박하고, 선하고, 순수하고, 진지하고, 가식 없고, 정의를 사랑하고, 신을 두려워하고, 자비롭고, 상냥하고, 맡은 바 의무에 대하여 용감한 사람이 되도록 하라. 철학이 너를 만들려고 했던 그런 사람으로 남도록 노력하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약 1900년 전, 그러니까 AD 130년 무렵 세계의 중심, 로마에 꼬마 철학자가 살고 있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그의 집안은 할아버지가 공화정 시대 최고 관직인 집정관을 지낸 명문가였다.


그는 여느 아이들과 달리 밤늦도록 공부하고 운동도 열심히 했다. 특이한 점은 어렸을 때부터 당시 유행하던 스토아 철학의 가르침을 스스로 실천하고자 노력했다는 것이다. 스토아 철학은 인생에서 지나친 욕망이나 쾌락은 결국 고통을 부르기 때문에 절제와 부동심(不動心)을 가져야 한다는 사상이다.


그는 절제와 금욕의 미덕을 배우겠다며 열 살 무렵부터 따스한 침대 대신 차가운 바닥에서 잠을 잤다. 당시로선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최고 오락거리였던 마차 경기와 검투사 시합도 가까이하지 않았다.


스토아 철학을 중시하던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어린 나이에 절제와 금욕을 알고 실천하는 아우렐리우스를 마음에 쏙 들어했다. ‘진짜 괜찮은 아이’란 뜻을 가진 ‘베르시무스(Versimus)’라 부르며 더없이 귀여워했다. 언젠가 최고 지도자가 될 감이라고 판단한 황제는 특별한 관심을 갖고 최상의 교육을 시켰다.


꼬마 철학자에겐 무려 17명의 가정교사가 동원되었으며, 어려서부터 공직에 나가 엘리트 코스를 밟도록 했다. 재무관, 집정관, 호민관, 원로원 의원 등을 거친 아우렐리우스는 결국 마흔 나이에 황제 자리에 올랐다.


최상의 지도자 교육을 받아 황제가 되었으나, 그때는 이미 제국 로마가 몰락하기 시작할 때였다. 귀족들의 사치와 병역 기피로 용병이 늘어나 군사력이 쇠퇴했다. 외침이 잦아 영토는 줄어들고, 세수는 급감했다. 아우렐리우스는 그나마 만인을 품는 덕치와 뛰어난 행정 능력으로 근근이 제국을 경영할 수 있었다.


그는 전쟁이 나면 전선에 나가 현장을 지휘하길 좋아하는 황제였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스토아 철학의 영향 때문인 듯하다. 그의 유명한 저서 ‘명상록’은 군대 막사를 비롯한 전쟁터에서 쓴 책이다. 공공연하게 살육이 자행되는 죽음의 전선에서 스스로 중심을 잡고 자기 자신을 경계할 목적으로 집필한 글이다. 


‘나 자신을 훈계함’이란 제목이 붙어있는 걸 보면 일종의 자경문(自警文)임에 분명하다. 감정이 격해지는 지점에서 이성을 일깨우고, 마음의 평정을 되찾으려는 학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인간적 고뇌를 털어놓고 그 해결책을 제시하는 수준 높은 철학서이기도 하다. 


첫머리에 소개한 글은 황제 스스로를 경계하는 말이지만, 우리 인간이 어떤 모습으로 사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나 더불어 사는 이웃을 위해서나 이런 자세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지고 품격 있는 인생이 되겠는가.


글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인생을 짧다. 지상에서의 삶의 유일한 결실은 경건한 성품과 공동체를 위한 행동이다.”


내가 명상록을 좋아하는 이유는, 권력과 명성과 돈 등 모든 것을 가진 제국의 일인자가 현재에 머물지 않고 품격과 양심을 갖춘 황제로 거듭나기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품격과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


“일단 너 자신에게 선하고, 겸손하고, 진실하고, 지혜롭고, 공감하고, 고매하다는 이름을 붙인 다음에는 다른 이름이 붙여지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리고 그런 이름들을 잃게 되면 서둘러 그런 이름들로 돌아가라.”(자기 정화) 


“얼굴은 고분고분하게 마음이 시키는 대로 표정을 짓고 자세를 가다듬는데, 마음은 자신이 시키는 대로 표정을 짓고 자세를 가다듬을 수 없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마음의 평정)


“현재의 상황에 경건한 마음으로 만족하는 것, 현재의 이웃들에게 공정하게 대하는 것, 어떤 것도 검정을 거치지 않은 채 마음속에 몰래 스며들지 못하도록 현재의 인상들을 세심하게 분석하는 것, 이것은 네가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일이다.”(만족)


“이 짧은 시간을 자연에 맞게 보내고 나서 즐거운 마음으로 떠나도록 하라. 올리브가 다 익은 뒤 낳아준 대지를 찬미하고 길러준 나무에 감사하며 떨어지듯이 말이다.”(감사)


“찌푸린 얼굴은 자연에 아주 어긋난다. 그것이 자주 반복되면 상냥한 얼굴 표정이 사라지기 시작하다가 종국에는 완전히 소멸되어 전혀 되살릴 수 없게 된다.”(밝은 표정) 


“남이 하는 말을 귀담아듣고, 되도록이면 말하는 사람의 영혼 속으로 들어가는 습관을 들여라.”(경청)


“공허한 과시욕, 무대 위에서의 연극, 양떼, 소떼, 강아지들에게 던져진 뼈다귀, 양어장에 던져진 빵 부스러기, 개미들의 노고와 짐 나르기, 겁먹은 생쥐들의 우왕좌왕, 실로 조종되는 인형들, 너는 이런 것들 사이에 똑바로 서되, 상냥하고 잘난 체하지 마라.”(겸손)


“가능하다면 잘못을 저지른 자를 타일러라. 가능하지 않다면 그런 경우를 위하여 관용이 네게 주어졌음을 명심하라. 신들도 그런 자들에게 관용을 베풀며, 건강과 부와 명성과 같은 몇 가지 목적을 위해서는 그들을 도와주기도 한다.”(관용)


황제 철학자의 이런 자기 고백적 가르침은 1900년 세월이 지났건만 조금도 어색하지 않고 가슴에 와닿는다. 평생 전쟁과 재앙에 시달리던 아우렐리우스는 5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영토 북부 도나우강 너머 게르만을 평정하고 돌아오는 길에 페스트에 걸려 숨졌다.


황제권을 물려받은 아들은 폭군이었다. 이후 로마 제국은 빠른 속도로 몰락해갔다. 그럼에도 아우렐리우스는 앞선 황제 4명과 더불어 로마 황금기를 이끈 오현제(五賢帝)로 불린다. 그의 철학적 성취와 도덕적 치세가 반영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명상록을 읽고, 아우렐리우스를 생각하면 율곡 이이 선생의 자경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19세 되던 해 어머니 신사임당의 죽음을 맞아 금강산에 들어가 1년가량 머물다 강릉 외조모 댁에 와서 지은 자기 수양의 글이다. 순전히 스스로를 경계하는 글로, 후세 젊은이들에게도 귀감이 된다. 중요 부분을 간략히 요약하면 이렇다.   


1.    성인의 경지에 이를 것이란 생각으로 뜻을 크게 가져라

2.    말을 적게 하라. 말을 할만한 때에만 하면 간략하지 않을 수 없다 

3.    마음에 평정을 갖도록 노력하라..

4.    언제나 경계하고 특히 혼자 있을 때 삼가야 한다 

5.    실천할 수 있는 공부를 하라

6.    재물, 영예 같은 이익을 너무 탐하지 마라.

7. 역경이 닥쳤을 때 스스로 반성하고 상대방을 감화시켜라

8. 잠자거나 아플 때가 아니면 눕지 마라


이 가운데 네 번째 항, 혼자 있을 때 삼가야 한다는 점을 잘 새겨볼 필요가 있다. 중국 고대 사상가들과 퇴계 이황 선생도 특별히 강조했던 덕목, 신독(愼獨)이 그것이다.


세상은 온통 유혹에 휩싸여 있다. 자기가 아무리 바로 살려고 해도 외적 환경이 그냥 놔두질 않는다. 다른 사람이 있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고, 조심하고 절제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신독이다. 최고의 인생 공부 아닐까 생각된다.


율곡은 스스로 다짐한 대로 인생을 살지 않았을까 싶다. 과거 준비 시기, 벼슬 시기, 학문 시기 모두 한 점 흐트러지지 않고 올곧은 모습을 보인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남에게, 공동체에 품격이 흘러넘치는 지식인으로 각인된 이유다. 


명상록을 보면, 황제 철학자도 이런 경지의 삶을 염원했던 게 틀림없다. 후세의 평가를 종합해 보면 아우렐리우스도 이런 경지에 이르지 않았을까 싶다. 스스로를 끊임없이 경계하는 삶, 그것을 통해 이뤄지는 품격 있는 인생을 살다 간 멋쟁이 황제 말이다. 



인용하거나 참고한 문헌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천병희 옮김, 숲, 2005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움베르토 에코, 윤병언 옮김, 아르테,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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