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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Dec 03. 2021

<23> 편견을 버려야 너그러워진다

심하면 품격 떨어뜨려. 첫인상에 너무 얽매이지 말자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약 200년 전, 영국 시골 롱본 지역의 베넷 가문 이야기다. 안주인 베넷 부인은 다섯 딸을 부유한 집으로 시집보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휴양을 위해 이곳으로 이사 온 부자 청년 빙리를 사윗감으로 점찍어 그 일가를 초대하여 무도회를 열었다. 


쾌활하고 사교적인 성품을 가진 빙리는 얼굴이 곱고 성격이 온화한 첫째 딸 제인과 사랑에 빠진다. 활달한 성격의 둘째 딸 엘리자베스는 함께 온 빙리 친구 다아시를 자신의 짝으로 염두에 뒀으나 그의 오만한 태도에 반감을 갖게 되었다.


엘리자베스는 다아시가 빙리와 언니의 결합을 방해한다고 오해하는가 하면, 장교인 위컴으로부터 다아시가 악덕 지주라는 모함의 말까지 듣게 된다. 귀족 출신에다 큰 부자인 다아시는 엘리자베스에게 매력을 느껴 신분 차이에도 불구하고 청혼을 한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그가 신사답지 못하고 오만하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이에 다아시는 그간의 속사정과 오해 부분을 해명하고 자신의 오만함을 반성하는 장문의 편지를 보내 엘리자베스의 마음을 풀게 만든다. 다아시가 베넷 가문의 큰 골칫거리를 남몰래 해결해 준 사실까지 알게 된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편견에 사로잡혔음을 인정하고 그와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 언니 제인도 결혼에 성공한다.


영국 여류 작가 제인 오스틴(1775-1817)의 소설 ‘오만과 편견’의 줄거리다. 시골 중산층 딸 부잣집의 흔한 구혼 스토리이지만 등장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워낙 뛰어나 연애소설의 백미라 불릴만하다. 남녀 주인공이 오만과 편견의 색안경을 낀 채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은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자화상이다. 오만과 편견을 버릴 때 비로소 품격도, 사랑도 생긴다는 사실을 깔끔하게 보여준다.


소설 서두에 등장하는 무도회에서, 다아시에 대한 참석자들의 평가는 세상에서 가장 건방지고 불쾌한 남자이며, 두 번 다시 초대하고 싶지 않은 인물이었다. 둘째 딸 엘리자베스와 춤추기를 거부한 탓에 베넷 부인은 크게 화가 났다.


“첫인상부터 전혀 호감이 가지 않았을뿐더러 눈 씻고 봐도 어디 한 군데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어야 말이지. 거만하고 자존심은 또 얼마나 강하던지. 고고한 척은 혼자 다하면서 이리저리 활개 치며 다니는 꼴이 자기가 꽤나 잘날 줄 알고 있는 모양이에요. 우리 엘리자베스가 춤을 추고 싶을 만큼 아름답지 않다니!”


아마 엘리자베스는 제인만큼 미인은 아니지만 표정이 밝은 데다 쾌활하고 유머가 있어 그런 성격이 다아시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같다. 수개월이 흘러 엘리자베스를 만난 다아시는 이런 말로 청혼을 했다. 


“혼자 애를 써보았지만 허사였습니다. 제 감정을 도무지 억누를 수가 없습니다. 제가 얼마나 당신을 동경하고 사랑해왔는가를 말하게 해 주십시오.”


청혼 순간에도 오만함이 배어 있었다. 솔직함을 핑계로 신분이 낮은 사람과 합치는데 따른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자존심이라고 표현했지만 엘리자베스는 기분 좋을 리가 없다. 다아시는 청혼이 당연히 받아들여질 줄 알았다. 그러나 거절의 수준은 꽤 높았다.


“처음에 알게 되었을 때부터, 아니 최초의 순간부터라고 말해야 좋겠지요. 당신의 태도는 오만하고 자만심이 강해서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분이라는 인상을 뚜렷이 받았고, 게다가 그 후에 일어난 사건으로 당신을 아주 싫어하게 되었어요. 알게 된 지 하루도 지나기 전에 당신 같은 분과는 절대로 결혼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다아시가 건네준 편지에 이어, 다아시 집 가정부의 주인 인물평에 엘리자베스는 크게 흔들린다. 


“그분은 최고의 지주이자, 최고의 주인님이십니다. 자기 일밖에 생각하지 않는 요즘의 이기적인 젊은 사람들과는 전혀 딴판입니다. 소작인이나 하인들도 주인님을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지요. 그분을 거만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짐작하기에는 그저 주인님이 보통 젊은이들처럼 별로 말을 잘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에 대해 잘못된 편견을 버리고 나면 금방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그 후에는 볼 때마다 좋은 인상을 받는다. 지금 엘리자베스의 심리 상태가 꼭 그렇다. 꼴도 보기 싫었던 사람에게 급격하게 호감이 간다. 작가의 현장 묘사다.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에게 자주 눈길을 던지지는 못했다. 그러나 흘낏 쳐다볼 때마다 그의 얼굴에서 온화하고 부드러운 표정을 찾아볼 수 있었고, 목소리도 도도하다거나 남을 경멸하는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작가의 묘사는 이렇게 이어진다.


“아, 그녀는 그에 대해 지녔던 그 무례한, 온갖 배은망덕한 감정과 그에게 던졌던 그 건방진 말들을 얼마나 사무치게 후회하고 뉘우쳤는지 모른다.”


 아버지한테 결혼을 허락받는 장면이다.


“자존심이 강한 불쾌한 사내라고 모두들 말하고 있지만,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야.”(아버지)


“네 좋아해요. 좋아하고 있어요. 그를 사랑하고 있어요. 부당한 자존심 같은 건 갖고 있지 않아요. 정말 부드러운 사람이에요.”


여자 마음 갈대라고 했던가. 엘리자베스의 마음이 180도 바뀐 이유는 뭘까. 소설로만 보면 다아시가 특별한 연애꾼도 아니고, 그녀에게 애타도록 매달린 것도 아니다. 그냥 자존심 지키면서 평소처럼 행동했을 뿐이다. 엘리자베스의 마음이 변한 것이다. 오만하다는 첫인상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면서 마음이 한없이 너그러워진 것이다. 


그렇다. 편견이란 게 이렇게 무섭고 고약한 성정이다. 편견이란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말한다. 사람이나 사물, 그리고 현상을 공정하게 보지 못하면 판단이 흐려질 수밖에 없다. 결국은 오해와 왜곡을 부른다.


사실 편견은 모든 사람이 조금씩은 갖고 있지 않나 싶다. 사람마다 생각의 바탕이 다 다르고, 각자의 경험이 그것에 얹히다 보면 객관성을 잃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이 말은 섬뜩하게 들린다. “상식은 18세 때까지 후천적으로 얻은 편견의 집합이다.” 자기는 지극히 상식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도 따지고 보면 편견일 수밖에 없다는 뜻 아닐까. 그가 “교육이 학습을 방해한다”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지 싶다. 아인슈타인의 말이 맞는다면 모든 인간이 편견 덩어리 인지도 모른다.


그럼 포기한 채 편견의 함정에 빠져 살아도 괜찮다는 말인가. 그건 아니다. 누가 뭐래도 편견은 분별없는 생각이어서 반듯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데 방해가 된다. 판단 미스로 일상에서 손해 보는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많고, 품격을 잃을 수가 있고, 좋은 사람 사귀기 힘들 수도 있다.


사람에 대한 편견은 보통 첫인상에서 비롯된다. 외모를 비롯한 첫인상이 좋으면 당연히 좋겠지만 첫인상이 조금 안 좋다고 해서 지레짐작으로 그 사람을 평가절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처음에는 그다지 호감이 가지 않지만 보면 볼수록 정이 가는 사람도 많지 않은가. 한길 사람 속을 첫 만남에서 정확히 알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정치 현상에 대한 편견이 없는지 수시로 자신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자기 좋아하는 쪽만 보면서 싫어하는 쪽은 끝내 외면하고 폄하하는 사람을 우리는 흔하게 본다. 정치적으로 태극기 부대와 ‘노빠’가 대표적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편견이 개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지역적 편향이나 남녀, 계층 및 세대 갈등의 저변에도 편견이 똬리 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종교적 신념에 따른 타 종교 비난 행위도 마찬가지다. 이런 정치적, 사회적 편견과 그에 따른 의사 표현이나 행동은 주변 사람들에게 품격 없는 사람으로 비치기 십상이다. 


편견을 완전히 버리기는 어렵다. 너나 할 것 없이 경험의 포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편견을 가급적 갖지 말자는 생각, 조금이라도 줄여보자는 노력만큼은 해야 하지 않을까. 자신의 품격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헨리 조지 소로우가 우리를 격려해준다.


“편견을 버리기에 너무 늦은 때는 없다.” 



인용하거나 참고한 문헌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신현철 옮김, 현대문화, 2006

<제인 오스틴의 말들> 박명숙 옮김, 마음산책,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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