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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Dec 27. 2021

<29>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즐겨라

미래를 근심하는 영혼은 불행하다, 긍정과 낙관이 행복의 열쇠다

“나는 춤을 출 때 춤만 춘다. 잠을 잘 때는 잠만 잔다. 그리고 아름다운 과수원을 홀로 거닐다가 잠시라도 딴생각을 하게 되면 곧 내 생각을 바로잡아 다시 그 과수원에서의 산책으로, 그 고독의 감미로움으로, 그리고 나에게로 돌려놓는다.”

-미셸 드 몽테뉴의 ‘수상록’



미국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1990년 개봉)를 보면, 명문고등학교에 새로 부임한 영어교사 키팅이 학생들에게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거듭해서 외친다. 미래의 성공을 준비하는데 너무 매몰되지 말고, 현재 위치에서 자기 자신에게 좀 더 집중하고 충실히 살라는 가르침이었다.


카르페 디엠은 고대 로마 서정시인 호라티우스가 송가(Odes)라는 시에 사용한 라틴어로, ‘바로 이 순간을 붙잡다’로 해석된다. 송가의 마지막 부분을 음미해보면 그 의미가 명확해진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이 순간에도 인생의 시간은 우릴 시기하며 흐른다네/ 바로 이 순간을 붙잡아야 하네, 미래에 일어날 일은 최소한으로 신경 쓰시구려.”


서두에 소개한 미셸 드 몽테뉴(1533-1592)의 문장을 읽으면 이 ‘카르페 디엠’이란 단어가 곧바로 떠오른다. 단 한순간도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히지 말고, 지금 현재에 충실하고 즐기라는 조언이다. 


일부에선 카르페 디엠을 ‘오로지 현재를 즐겨라’라는 의미로 사용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한동일 교수가 저서 ‘라틴어 수업’에서 한 지적이다. “오늘 이 시간 세속적이고 육체적이며 일시적인 쾌락을 즐기라는 뜻이 아니라, 충만한 삶과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는 영혼의 평화로운 상태, 동양식으로 표현하면 안분지족(安分知足)을 의미한다. 매 순간 충만한 생의 의미를 느끼면서 살아가라는 경구다.”


아무튼 몽테뉴는 현실에 충실하고, 현재를 즐겨야 비로소 행복해진다고 생각했다. 현재의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수상록의 다른 표현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지 못하고 언제나 그 너머를 향해 있다. 두려움과 욕망 그리고 기대는 우리를 미래로 내던져 앞날을 그려보는 즐거움을 앗아가고, 미처 깨닫기도 전에 현재의 시간을 흘려보내게 만든다. 미래에 대해 근심하는 영혼은 불행하다.”


“우리가 무엇을 알게 되고 무엇을 누리게 되든, 우리는 그것이 충분한 만족을 주지 못한다고 느끼며, 현재의 것이 적당함에도 언제나 미지의 미래를 좇는다. 그러나 실은 현존하는 것들이 충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마구잡이로 잘못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표현은 몽테뉴 자신의 삶의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가 이 책을 발표한 것은 1580년, 47세 때였다. 공직을 그만두고 저술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시기이다. 지나온 인생을 반추해보니 역시 ‘지금 현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몽테뉴는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필가이다. 르네상스 문화가 유럽 전역에 꽃 피우던 시기에 살았으며, 우리나라로 치면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율곡 이이가 활약하던 때다.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법률학을 공부한 뒤 보르도 재판소에서 법관으로 13년간 근무했다. 


정치적 식견이 뛰어나 앙리 4세에게 여러 공직을 제의받았으나 사양하고, 학문에 관심을 가졌다. 30대 후반에 영지를 상속받으면서 그때부터 저술에만 몰두하게 된다. 곧바로 시작한 게 수상록 집필이었다. 꼬박 10년간 인간과 세상을 탐구한 결과물이 바로 수상록이다.  


이 책의 원제목은 ‘엣세(Les Essais)’다. ‘시도’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요즘 흔히 쓰는 ‘에세이’란 단어의 어원이다. 그는 인생에서 누구나 경험하는 수많은 상황과 조건에 대해 깊숙이 사유하고 성찰한 결과 이처럼 주옥같은 저서를 남겼다. 


행복, 사랑, 명예, 학문, 우정, 대화, 취미, 나이, 슬픔, 질병, 죽음, 분노, 고독 등 인생사 모든 문제를 다룬 듯한 방대한 분량의 저서다. 후세의 루소와 니체 같은 철학자들, 셰익스피어와 에머슨 같은 문학가들에게 영감을 준 것으로 평가되는 걸작이다. 그가 살던 시기 프랑스엔 역마차가 오갔지만 500년이 지나 자율주행차가 다니는 지금 서울에서 읽어도 전혀 낯설지 않다. 


몽테뉴는 덧없이 흘러가는 인생을 치열하게 살아야 진정으로 즐거운 인생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삶을 즐기는 방법은 있다. 나는 인생을 남들의 두 배로 즐겼는데, 즐거움의 크기는 내가 얼마나 전심전력 했는지로 측정할 수 있다. 그리고 내 인생이 얼마나 짧은 지를 보는 지금, 나는 즐거움에 더 깊이 잠기고 싶다. 민첩하게 달아나는 삶을 민첩하게 붙잡고 싶다. 서둘러 흘러가는 인생을 더 잘 활용함으로써 보상받고 싶다. 인생이 짧을수록 더 깊고 풍성하게 만들어야 한다.”


대다수 보통사람들이 현재를 제대로 즐길 수 없는 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 두려움 때문이다. 공부하는 학생들은 진로 문제로, 젊은이들은 결혼과 육아 문제로, 직장인들은 승진 문제로, 나이 든 중년들은 노후와 건강 문제로 저마다 걱정이다. 


적당한 걱정은 나쁠 것도 없다. 오히려 좋은 측면이 있다. 그것을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 생의 활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를 보다 충실하게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할 수가 있다. 문제는 걱정이 너무 많거나 커서 현재 생활이 불행하거나 건강을 해치는 수준에 이른 경우다.


그런데 대부분의 걱정은 괜히, 쓸데없이 하는 것이다. 심리학자 어니 젤린스키가 재미있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우리가 하는 걱정거리의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사건들에 대한 것이고, 30%는 이미 일어난 사건들, 22%는 사소한 사건들, 4%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사건들에 대한 것들이고, 나머지 4%만이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진짜 사건이다. 즉 96%의 걱정거리는 쓸데없는 것이다.”(문신원 옮김 ‘느리게 사는 즐거움’)


성경에는 예수가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2000년 전에도 사람들이 미래를 걱정하느라 현재를 즐기지 못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 것 같다. 위인들도 걱정하느라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고 이구동성으로 조언한다. 


“나는 일생을 전혀 발생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다가 헛되이 보냈다.”(마크 트웨인) “문제의 해결책이 있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해결책이 없다면 역시 걱정해도 소용없는 일이다.”(달라이라마) “과거는 이미 존재하지 않고, 미래는 아직 닥치지 않았으며, 존재하는 것은 오직 현재뿐이다. 현재 안에서만 인간의 영혼에 자유로운 신성이 나타난다.”(레프 톨스토이)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현재를 즐긴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살아가는 순간순간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하는 것이 인생이고, 그 과정에 치열한 경쟁 이 개입되기 때문에 불안과 두려움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인간이 추구하는 명예와 돈과 권력이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경쟁해서 쟁취해야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 아닐까 싶다. 긍정과 낙관의 자세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사람은 개개인의 성격이나 성장 배경에 따라, 또 처한 환경에 따라 삶을 대하는 자세나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행복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몽테뉴는 세상만사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부유함과 궁핍함은 개인의 마음에 달려 있다. 부든 명예든 건강이든 그것을 소유한 이가 부여한 의미 이상의 아름다움이나 즐거움을 지니지 못한다. 본인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하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불행하다. 스스로의 확신이야말로 본질적이고 진실한 것이다.”


똑같은 장미를 보고도 긍정론자, 낙관주의자는 꽃을 보는데 반해 부정론자, 비관주의자는 가시를 본다고 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 이렇게 말하는 천하태평 낙관주의자가 되긴 어렵다. 하지만 오늘 하루, 미래에 대한 걱정일랑 잠시 접고 그냥 최선을 다하고, 또 즐길 수는 있지 않을까.



인용하거나 참고한 책

<몽테뉴의 수상록> 미셸 드 몽테뉴, 정영훈 엮음, 안해린 옮김, 메이트북스, 2020 

<몰입하는 삶의 즐거움> 미셸 드 몽테뉴, 김영후 옮김, 리더북스,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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