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처럼 Aug 28. 2022

행복을 잡겠다고 산 넘어 달려갈
필요가 없다

-박목월

“행복을 잡기 위해 산을 넘고 골짜기를 건너 달려갈 필요가 없다.”


*박목월(1915~1978)=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경북 경주에서 성장. 시인. 한양대 국문과 교수, 한국시인협회장 역임. 저서로 시집 ‘청록집’ 수필집 ‘행복의 얼굴’ 등 다수.



청록파 3인방의 한 사람으로 유명한 박목월은 당대에 이름을 떨친 시인이었지만 경제적으로 그다지 풍요롭지는 못했다. 다섯 남매를 키우면서 소박하면서도 서민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보였다.


동네에 서커스가 오자 개구멍으로 몰래 아들을 들여보내고는 들키지 않도록 자기는 서커스가 끝날 때까지 개구멍을 막고 밖에 서 있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또 아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온 동네를 뒤져 만화책을 한 자루 쓸어 담아오기도 했단다. 그의 시 ‘가정’을 보면 아버지로서의 애환을 엿볼 수 있다.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 문 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그는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 호인이었다. 조용한 성품에다 다정다감했으며 후배들에게도 존댓말을 썼다. 30대 후반에 여대생 제자의 구애를 뿌리치지 못하고 제주도로 동반 도피 여행을 떠나기도 했지만 가정을 포기하지 못하는 보통의 소시민이었다. 또 박정희 정부 때는 일시적이나마 권력에 아부하는 나약한 지식인이었다.


이런 박목월이었기에 그의 시 세계는 고고하거나 거창하지 않다. 시의 소재를 주로 일상생활 속에서 찾았고, 행복도 그곳에서 찾으려 했다. 서두에 소개한 문장은 그의 수필집 ‘밤에 쓴 인생론’에 나오는 표현이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곁에 가까이 있다는 의미겠다. 


그렇다. 행복의 무지개를 잡겠다고 산 넘고 골짜기 건너 달려간들 무지개가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란 법 없다. 그런 수고보다 애정을 갖고 자기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는 게 더 나을 수 있다.


시인은 또 다른 수필집 ‘행복의 얼굴’에서 이렇게 썼다. “행복은 바로 삶 속에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지금 발견하는 자에게 존재하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18>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으면 행복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