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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Oct 01. 2022

삶은 누구에게나 의미가 있다

-모든 선택은 자신의 몫이므로 책임감 갖고 적극적으로 찾아야 돼

“나는 살아있는 인간 실험실이자 시험장이었던 강제 수용소에서 어떤 사람들이 성자처럼 행동할 때 또 다른 사람들은 돼지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은 내면에 두 개의 잠재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그중 어떤 것을 취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본인의 의지에 달려 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이던 1945년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해 2월, 꽤 유명한 유대인 작곡가이던 수감자 F 씨는 꿈을 꾸었다. 어떤 예언자가 나타나 소원을 말해보라고 하길래, 자신의 고통이 사라질 날이 너무나 궁금해 전쟁이 언제 끝날지 물었다.


 예언자는 3월 30일이라고 답했단다. F 씨는 희망에 찬 나날을 보냈으나 3월의 전황은 전혀 희망적이지 않았다. 3월 29일 그는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고, 열이 크게 올라 의식을 잃었으며, 31일 죽고 말았다. 독일은 5월에 패망했다.


저명한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빅터 프랭클(1905~1997)이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 소개한 사연이다. 프랭클은 F 씨에게서 꿈 이야기를 직접 들었으며, 죽어가는 모습을 의사의 눈으로 지켜봤다. 인간의 정신 상태가 육체의 면역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말해주는 단적인 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프랭클 자신이 아우슈비츠 등 네 곳의 강제 수용소에서 3년 간 직접 경험한 사실을 토대로 저술한 인간 심리 보고서다. 죽음의 위협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또 그것이 자신들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세밀하게 관찰한 정신의학 리포트다.


프랭클은 이 한 권의 책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강제 수용소 체험과 후속 연구를 토대로 ‘로고테라피’라는 새로운 심리치료 기법을 창시한 덕분이다. 로고테라피란 자기 삶의 가치와 의미를 깨닫고 목표를 설정하도록 돕는 실존적 심리치료 기법으로, 흔히 ‘의미 치료’라 번역된다.


프랭클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으며, 빈 의과대학에서 신경과와 정신과 수련을 받은 뒤 우울증 및 자살 연구에 매진했다. 그러나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가족들과 함께 나치 강제 수용소로 이송돼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겨야 했다.


독일 패망으로 자신은 용케 살아났으나 부모와 아내, 동생은 죽음을 면치 못했다. 그는 수용소에서 사람이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의미를 알면 최악의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지만 그것을 놓칠 경우 곧바로 무너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죽음의 수용소’에는 그런 사례들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가 마지막에 있었던 수용소의 경우 1944년 성탄절부터 새해 초까지의 사망률이 이전보다 확연하게 높았다. 이 기간에 사망률이 높았던 것은 보다 가혹해진 노동조건, 식량사정 악화, 기후 변화, 새로운 전염병 때문이 아닌 것으로 분석됐다. 수감자들이 성탄절에는 집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었다가 실의에 빠진 나머지 육체적 저항력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으로 파악됐다.   

당시 프랭클 자신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고,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수용소에서도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하루 한 컵의 물이 배급되면 반 컵만 마시고 나머지로 세수와 면도를 했다. 깨진 유리 조각으로 면도를 해야 하는 최악의 조건이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그 덕분에 건강해 보일 수 있어 가스실로 잡혀가는 것을 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수감 중 헤어진 아내의 생사를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고 했다. 아내와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살아남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단다. 


생애 처음으로 나는 그렇게 많은 시인들이 시를 통해 노래하고, 그렇게 많은 사상가들이 최고의 지혜라고 외쳤던 하나의 진리를 깨달았다. 그 진리란 바로 사랑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이고 가장 숭고한 목표라는 것이었다. 나는 인간의 시와 사상과 믿음이 설파하는 숭고한 비밀의 의미를 간파했다.”


   “나는 또다시 아내와 침묵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쩌면 당시 나는 내 고통에 대한, 그리고 내가 서서히 죽어가야 하는 상황에 대한 정당한 이유를 찾으려고 애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내 영혼이 사방을 뒤덮은 음울한 빛을 뚫고 나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것이 절망적이고 의미 없는 세계를 뛰어넘는 것을 느꼈다. ‘삶에 궁극적인 목적이 있는가’라는 나의 질문에 어디선가 ‘그렇다’라고 하는 활기찬 대답을 들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도 프랭클은 삶의 의미를 생각했다고 한다. 수용 중 발진티푸스 환자 수용소에 자원봉사자로 일하러 갈 의사를 물어왔을 때, 그곳에 가는 것이 죽음을 더 앞당긴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선뜻 받아들인 이유가 그것이란다.


만약 내가 죽어야 한다면 나는 내 죽음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의사로서 동료들을 돕다가 죽는 것이 그전처럼 비생산적인 일을 하는 노동자로 무기력하게 살다가 죽는 것보다 확실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죽어가는 수감자들을 관찰한 프랭클은 정신과 의사로서, 심리학자로서 그들의 심리 상황을 이렇게 진단했다.

그 자신의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면 수감자는 불운한 사람이다.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과 더불어 그는 정신력도 상실하게 된다. 그는 자기 자신을 퇴화시키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퇴락의 길을 걷는다. 일반적으로 이런 현상은 아주 갑자기 위기라는 형태를 띠고 일어난다.”


저서에서 프랭클은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한 말을 여러 차례 인용한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니체는 이런 말도 남겼단다.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다.”


프랭클은 수용소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가족은 여동생을 빼고 모두 죽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우울증과 자살을 치료하던 자신이 심한 우울증에 빠지고 말았다.


정신을 되찾은 프랭클은 수용소 시절을 되돌아보며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불과 9일 만에 완성한 독일어판 책의 제목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살만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한 심리학자의 강제 수용소 체험에서’였다.


책을 내고 나서 폴리클리닉 병원의 신경과 과장으로 취임했는데, 그곳에서 한 여성을 만나 재혼했다. 그리고는 로고테라피 이론을 정립하고, 미국 등 전 세계를 무대로 강연을 하며 이를 전파했다.


현대 심리학과 정신의학에서 각광받고 있는 로고테라피는 환자의 미래에 초점을 맞춘다. 언젠가 환자가 이뤄내야 할 목표가 갖는 의미를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이 자신의 삶 중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이 원초적인 동력이라고 본다. 


사람들은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순응주의자가 되거나 전체주의자가 된다.” 


전통이 점점 쇠퇴해가는 요즘 같은 시대에 정신의학의 주된 과제는 인간에게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해주는 것이다.”


나는 전통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삶은 각각의 사람에게 모두 의미 있는 것이며, 더 나아가 말 그대로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그 의미를 갖고 있다는 믿음이 전달되기를 바란다.”


그렇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당면한 상황이 똑같은 데도 어떤 사람은 절망에 빠지지만 어떤 사람은 희망을 찾는다. 어떤 사람은 어두운 죽음을 택하지만 어떤 사람은 활기찬 생명을 선택한다. 그런데 그 선택의 방향과 내용은 전적으로 본인 몫이다.


인생에서 의미 없고 하찮게 보이는 일이라도, 또 고통이 아무리 크더라도 나름대로 삶의 의미를 찾아낸다면 얼마든지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 프랭클은 수용소 생활 중 잃어버린 출간용 원고 뭉치를 복원하는 것이 살아남는 의미였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책임감이라 생각된다. 의미를 찾아내야 하는 주체는 결국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프랭클은 90세 때 쓴 자서전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삶의 의미를 물어서는 안 된다. 나에게 발견되어 실현되길 기다리고 있는 ‘내 삶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삶이 나에게 하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우리 존재를 스스로 책임질 때 삶이 나에게 던지는 질문에 답할 수 있다.”

 

인용하거나 참고한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이시형 옮김, 청아출판사, 2020

<빅터 프랭클>(자서전) 빅터 프랭클, 박상미 옮김, 특별한 서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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