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이어령(1934~2022)=충남 아산 출생. 문학평론가, 소설가, 시인, 언론인. 이화여대 국문학과 교수, 초대 문화부 장관 역임. 저서로 ‘축소지향의 일본인’ ‘지성에서 영성으로’ 등 다수.
이어령이 2015년에 쓴 에세이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에 나오는 말이다. 금지옥엽으로 훌륭하게 키웠으나 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보낸 딸을 그리워하며 쓴 책이다. 사랑하는 외동딸을 위해 깜짝 이벤트로 피아노를 사 주었을 때 딸이 너무나 기쁜 나머지 내뱉었던 당시의 감회를 회상하는 말이다.
적기에 피아노를 사주었지만 아버지는 마음이 아프다. 사랑을 듬뿍 전하지 못한 게 너무나 아쉽단다. 더 어렸을 때였을 것이다. “글을 쓰느라 어린 딸의 인사를 외면했던, 그 후회의 순간들을, 만약 그 순간의 작은 따뜻함을 알아차리고 몸을 돌려 딸을 안고 눈을 맞추고 또 볼에 입을 맞추었다면 얼마나 행복한 순간이었을까.”
시기를 놓쳐버렸으니 안타까움이 밀려올 뿐이다. “나는 어리석게도 좋은 피아노를 사주고 좋은 승용차에 태워 사립학교에 보내는 것이 아빠의 행복이자 능력이라고 믿었다.”
대한민국 최고 지성이 사랑과 행복의 타이밍을 놓쳐버린 것을 뒤늦게 후회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크게 의미 없어 보이는 평범한 일상에 관심을 갖고 애틋하게 사랑을 주고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한다. 아버지는 병을 얻고 죽음을 생각하고서야 지나간 과거가 아련하게 떠오른다. 하지만 사랑의 대상은 멀리 떠나고 없다.
정말 그렇다. 행복에도 타이밍이 있다. 저마다 행복을 찾겠다며 전심전력으로 내달리다 아무것도 붙잡지 못하는 낭패를 경험하는 것이 우리들 대다수의 현주소다. 미래의 청사진이 중요한 건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누구에게나 시간과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미루지 말고 적절히 베풀고 향유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행복이란 각자 삶 속에 깃들어 있는 ‘바로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