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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Nov 09. 2022

<30> 안분지족, 안빈낙도가
행복이다

-윤선도

“산수간 바위 아래 띠집을 짓는다 하니/ 그 모르는 남들은 비웃는다 한다마는/ 어리석은 내 뜻에는 분수인가 하노라/ 보리밥 풋나물을 알맞추 먹은 뒤에/ 바위 끝 물가에서 실컷 노니노라/ 여남은 일이야 부러울 줄 있으랴.”

 

*윤선도(1587~1671)=조선 중기 문신, 시조시인. 호는 고산. 국문학에서 정철과 더불어 조선 시가에 쌍벽을 이룸. 저서로 ‘어부사시사’ ‘오우가’ 등 다수.


 

윤선도는 남인 계열 선비로서, 일평생 집권 서인세력에 맞서는 ‘야당’ 정객이었다. 모함과 탄핵이 난무하는 가운데 20년 이상 유배 생활을 하고, 19년 동안 은거 생활을 했다. 은거 기간 대부분은 고향 해남에서 보냈다.


첫머리에 소개한 글은 ‘만흥(漫興)’이란 제목의 연시조로, 전체 6수 중 전반부 2 수다. 만흥이란 흥겨움이 마음속에 가득 차있다는 뜻이므로 행복과 유사한 의미를 지닌다. 편안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알고(안분지족),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기는(안빈낙도) 삶이니 행복하지 않을 수 없겠다. 


윤선도가 이 시를 지은 것은 경상도 영덕의 유배생활을 마치고 해남 금쇄동에 은거하던 56세 때다. 인생무상을 뼈저리게 느낀 나머지 돈이나 권력과 무관하게 살겠다는 각오가 엿보인다. 하지만 조상 잘 만나 부귀영화를 타고난 그에게 세속적인 삶을 포기하는 건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이후에도, 아니 71세 때도 벼슬길에 나섰다가 정쟁에 휘말려 귀양살이를 했다. 이렇듯 안분지족, 안빈낙도의 삶은 말처럼 쉽지 않다.


해남 땅끝을 지나 보길도에 가보면 알 수 있다. 윤선도가 제주도 가는 길에 들렀다가 워낙 경치가 아름다워 정착했다는 곳이다. 그는 이곳에 여러 개의 아름다운 건물과 정자를 짓고 연못을 파서 예쁘게 꾸몄다. 엄청나게 물려받은 유산으로 부용동 전체를 자기 정원으로 꾸민 것이다. 이곳에서 13년을 살다 갔다.


윤선도는 안분지족, 안빈낙도를 노래했지만 진심으로 마음이 편하진 않았을 것이다. 낯선 곳, 길고 긴 유배생활을 상상해보라. 


행복해서가 아니라 행복이 마냥 그리웠기에 그런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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