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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Apr 26. 2023

<16> 백인 처녀가 밀림에서
꿈을 찾다

-제인 구달의 아프리카 여행

1957년 봄 어느 날, 영국의 런던 부두. 


미모의 23세 백인 여성이 아프리카 케냐로 항해할 정기 여객선에서 가족들과 눈물의 이별 포옹을 하고 있었다. 사자, 표범, 코끼리, 기린, 원숭이를 야생에서 구경하고자 검은 대륙을 향해 홀로 긴 여행을 떠나는 순간이다.

 

침팬지 연구로 동물 행동학에 기념비적인 업적을 세운 제인 구달(1934~ )의 첫 해외 여행길이다. 오래전, 여덟아홉 살 때부터 아프리카 밀림에서 야생 동물들과 더불어 사는 것을 꿈꿔왔지만 막상 실천에 옮기려니 두려움이 확 밀려온다. 5년 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던 고등학교 친구로부터 편지를 받고 선뜻 나선 것이다. 


“부모님이 케냐에 농장을 샀어. 한 번 다녀가지 않을래?”


여객선의 목적지는 아프리카 대륙 동쪽 해안 도시인 케냐 몸바사. 지중해와 홍해를 거쳐 대륙 해안을 따라 남하하는 것이 최단 코스지만 마침 이집트에서 전쟁이 일어나 수에즈 운하가 닫혀버렸다. 대륙의 서쪽 해안을 따라 내려가 남단 희망봉을 거쳐 몸바사로 올라가는 뱃길을 택하는 수밖에 없었다. 항해하는데 3주나 걸렸다.


몸바사에서 케냐 수도 나이로비까지는 이틀 동안 기차로 이동해야 했다. 벌써 아프리카 대륙 깊숙한 곳까지 들어온 것이다. 역에서 친구와 그녀 부모를 만나 농장으로 가는 길에 벌써 기린 몇 마리가 느릿느릿 걸어 다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꿈에 그리던 아프리카의 품에 진짜 안겼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쳤다. 각별하게 동물을 가까이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런던에서 태어난 구달은 유아기 때 정원에서 발견한 지렁이를 한 움큼 모아 침대 곁에 갖다 놓기도 했으며, 바닷가 할머니 댁에 살 때는 방으로 달팽이를 들여놓기도 했다. 네 살 때의 일이다. 닭이 어디로 알을 낳는지 궁금해 그것을 직접 관찰하려고 무려 4시간 동안 닭장에 숨어 지내느라 가족들이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한 적이 있다.


 자연주의자의 소질을 다분히 타고났다고 봐야겠다. 그녀는 자연과 동물, 자신과 멀리 떨어진 야생의 장소를 동경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학교 공부보다는 미지의 세계, 동물 세계의 신비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 쪽 독서에 심취했다. 철학과 시를 공부하면서도 동물에 관한 책은 꾸준히 읽었다.

 

하지만 구달은 부모의 이혼으로 경제 사정이 여의치 않아 대학에 진학할 수가 없었다. 외국어에 능숙하지 못해 장학금을 받아내지도 못했다. 어머니는 대신 비서학교 진학을 권했다. 먼 나라 여행과 동물 연구에 도움이 될 것이란 이유에서였다. 비서 자격을 취득한 구달은 병원과 대학, 영화 제작사에서 일했다. 친구로부터 아프리카 여행 제의를 받은 것은 이 무렵이었다.


케냐의 친구네 농장에 머물던 구달은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이왕 아프리카에 온 이상 귀국할 게 아니라 야생동물을 제대로 공부해 보자는 욕심이 생긴 것이다. 저명한 고생물학자이자 인류학자인 루이스 리키(1903~1972)를 만난 것은 일생일대의 행운이었다. 자연사박물관 관장이던 리키는 야생동물에 대한 구달의 남다른 관심과 열정에 매료되어 곧바로 자신의 개인 비서 일을 맡겼다.


박물관에서 일하며 1년 동안 동아프리카 동물에 대해 공부한 구달은 리키 아내의 도움으로 올두바이 협곡 발굴에 나섰다. 당시 올두바이는 유목생활을 하는 마사이족 이외에는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화석 연구로 진화의 신비를 캐면서 사자의 포효, 하이에나의 외침을 듣는가 하면 코뿔소와 직접 대면하기도 했다.


올두바이에서 돌아오자 리키는 침팬지 연구를 제안했다. 침팬지는 아프리카에만 살며, 대륙의 서부 해안에서 탄자니아까지 적도 밀림지대에 분포되어 있는데, 현장에서 연구해 볼 의향이 없느냐고 물어온 것이다. 당시 침팬지 현장 연구는 남성 전유물이었으며, 고작 수개월의 관찰에 그치는 바람에 뚜렷한 성과가 없다고 했다. 리키는 구달의 연구 역량과 열정을 높이사 자신의 연줄을 총동원해 연구자금을 마련해 주었다.


구달의 침팬지 연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1960년 7월, 현지인의 안내를 받아 탄자니아 침팬지 보호구역인 탕가니카 호숫가 곰베로 향했다. 그녀 옆에는 어머니가 동행했다. 딸의 안전을 위한다며 따라나선 것이다. 5개월 뒤 어머니는 밀림에서 철수했지만, 구달은 호수 변과 계곡을 쉼 없이 오르내리며 침팬지를 관찰했다. 어느덧 침팬지들과 친구가 되었다.

 

구달은 초기 연구에서 획기적인 사실 두 가지를 발견했다. 침팬지가 사냥과 육식을 즐긴다는 사실, 그리고 나뭇가지 등 도구를 사용해서 흰개미를 잡아먹는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특히 두 번째 발견은 오로지 인간만이 도구를 제작하고 사용한다는 통념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어서 학계에 충격을 던졌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리키는 “이제 우리는 인간을 다시 정의하든가, 도구를 다시 정의하든가, 아니면 침팬지를 인간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연구 성과로 구달은 일약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1965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동물 행동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에도 아프리카에 머물며 침팬지 현장 연구를 계속했으며, 1977년 설립된 ‘제인 구달 연구소’를 통해 지금도 연구는 이어지고 있다.


어느새 구달은 환경운동가로 변신했다. 풀뿌리 환경운동 단체인 ‘뿌리와 새싹’을 통해 전 세계로 그녀의 목소리가 전해지고 있다. 세계 방방곡곡을 다니며 순회 강연한 덕분이다. 그녀의 메시지는 단 한 가지 아닌가 싶다. 


“지구는 지구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의 것이다.”


구달의 성공한 인생은 20대 초반 케냐 여행길에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평생 아프리카를 오가며 살게 되리라고는 당시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순간의 결정이 일생의 운명이 된 셈이다. 


하지만 낯선 여행길에 자신의 꿈을 키우고, 내면의 자아를 새삼 발견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여행이 축복인 이유다.

 

참고한 책

<희망의 이유> 제인 구달, 박순영 옮김, 김영사, 2023

<인간의 그늘에서> 제인 구달, 최재천 이상임 옮김, 사이언스 북스,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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