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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Apr 27. 2023

<17> 여행길에 건축을 독학하다

-안도 다다오의 유럽 배낭여행

1965년 4월, 24세 일본 청년이 유럽 배낭여행에 나섰다.


비행기는 언감생심, 배와 기차로 7개월가량 유럽 각지를 둘러본다는 일정이었다. 1년 전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가 내려지자,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 모아 장기 해외여행을 준비한 것이다.


모스크바로 가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기 위해 요코하마 항 여객선에 몸을 실은 청년은 훗날 세계적 건축가가 될 안도 다다오(1941~ ).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건축 일이나 해볼까 하고 이론과 실무를 조금씩 익히고 있을 때였다. 건축을 대학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한 탓에 그를 인정하고 받아주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그렇다면 밑그림을 남들보다 멋지게 그려보자는 게 당시 안도의 생각이었다. 건축을 온몸으로 느끼려면 여행을 많이 해야 한다는 건 고대 이후 변함없는 진리 아닌가. 동서고금의 멋진 건축물이 서양에 있는 게 사실이라면 유럽 여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제도권에서 건축을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그것에 대한 남다른 식견이 있었다고 봐야겠다. 


사실은 어릴 적부터 건축에 관심이 있었다. 외할머니 손에 자라던 초등학생 안도에게 재미있는 놀이는 집 주변 목공소에서 얻은 나무조각으로 뭔가 만드는 일밖에 없었다. 중학생 시절 집을 증축했는데, 캄캄하던 집을 갑자기 환하게 만드는 목수 아저씨의 손길이 얼마나 멋있게 보였는지 모른다. 건축가라는 직업을 모를 때라 마음속으로 목수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안도는 그러나 공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기계과에서 도면 그리는 법을 배우긴 했으나 건축 설계나 디자인과는 무관한 것이었다고 한다. 고교 시절 운동에 관심이 많아 한때 권투 선수 생활을 했지만 전국 1등, 세계 1등은 절대 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깨끗이 단념했다.


안도는 고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지 않으면서 직장 취업도 하지 않았다. 영혼이 자유롭고 개성이 뚜렷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대신 친구 소개로 디자인에 손을 댔으며, 인테리어에도 관심을 가졌다. 


이 무렵 안도는 나름 건축 일을 시작했다고 봐야겠다. 전위예술 단체에 몸을 담는가 하면 아르바이트 수준이긴 했지만 상업적 도시개발에도 관심을 가졌다. 중고교 시절엔 지독히도 공부를 싫어했지만 20대가 되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공붓벌레가 되었다. 건축 관련 독서가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일본과 유럽의 유명 건축가들이 쓴 책을 섭렵하고, 아무리 돈이 없어도 건축 관련 잡지를 구독했다.


기초가 허약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대학 건축과 학생들이 공부하는 모든 책을 구입해 1년 만에 독파하기도 했다. 독학에 불이 붙었다고 해야겠다. 그가 유럽 여행에 나선 것은 이 무렵이다. 드넓은 건축 세상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당시 일본에는 포스트 모더니즘 건축이 제대로 소개되지 않고 있었다. 


모스크바에 도착한 안도는 곧바로 핀란드로 건너갔다. 백야와 함께 북유럽 근대 건축가들의 작품을 실컷 감상할 수 있었다. 혹한의 자연환경 속에서 열 낭비를 최소화해 빛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기술에 감명을 받았다. 스웨덴, 덴마크,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을 거치며 수많은 발견과 진한 감동을 경험했다. 특히 남유럽에서 살펴본 고대 로마 유적과 고전주의 건축물들은 그의 초기 건축 설계와 시공에 엄청난 영감을 주었다. 


유럽 여행을 마친 안도는 남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여객선을 타고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을 거쳐 마다가스카르, 인도, 필리핀을 경유해 귀국했다. 배낭여행이라지만 여행비로 60만 엔이나 들었다. 그는 여행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고 20대에 먼 길 여행을 자주 다녔다. 1967년 미국 서부, 1968년 유럽과 중동 인도, 1969년 미국 횡단 여행을 했다.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일까. 안도는 28세 때인 1969년 고향 오사카에 건축사무소를 열었다. ‘안도 다다오 건축 연구소’란 간판이 내걸렸다. 불과 10평짜리 자그마한 사무실이지만 건축가 안도는 이미 선진 해외 건축에 눈을 떴기에 자신만만했다. 비록 대학은 문 앞에도 못 가봤지만 독학으로 당당하게 1급 건축사 면허를 취득한 상태였다.


학벌에 따른 연줄은 무시할 수 없었다. 상당기간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일찌감치 심미안을 갖춘 건축가의 실력은 언젠가 인정받는 법. 근대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의 영향을 받아 콘크리트를 이용한 도시 재개발 사업에 특별한 능력을 발휘했다. 공공기관, 미술관, 교회, 절 등 대형 프로젝트에도 인상적인 작품을 남기면서 1980년을 전후해 일약 세계적인 건축가로 발돋움했다.


물과 빛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녹지와의 조화를 추구하는 그의 건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홋카이도에 있는 ‘물의 교회’가 대표적 작품이며, 우리나라에도 제주도의 본태박물관, 서울의 LG아트센터 등으로 명성을 얻었다.


안도에게 여행은 대 건축가의 꿈을 이루도록 한 복된 여정이었다. 유럽 여행길에 오를 때의 청년 안도는 그다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 ‘노가다’였다. 건축을 제대로 공부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안목을 넓히는 여행조차 하지 않았다면 건축가로서 자리 잡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수많은 건축가 중의 한 명에 그쳤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는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시간과 돈을 여행에 투자했다. 후배들에게 강연할 때마다 안도는 말한다. 


”나는 여행하면서 생각하고 성장해 왔다.”


참고한 책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안도 다다오, 이규원 옮김, 안그라픽스, 2010

<안도 다다오, 건축을 살다> 미야케 리이치, 위정훈 옮김, 열린책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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