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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May 17. 2023

<19> 조난 생존 실험에 자신을
던지다

-알랭 봉바르의 대서양 횡단 표류 여행

프랑스의 내과 의사이자 생물학자 알랭 봉바르(1924~2005)는 해상 조난사고에 관심이 많았다. 바닷가 시골에서 태어나 성장하면서 조난자들이 평균 3일밖에 살지 못하고 어이없이 죽어가는 모습에 의문을 가졌다. 


바다에는 양식이 될 수 있는 생명체와 물이 무궁무진한데 보트로 표류하는 사람들은 왜 3일밖에 살지 못할까? 의학적으로는 사람이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10일은 살 수 있고, 물을 먹으면 30일도 살 수 있는데….’


봉바르가 의과대학에 진학해 이 문제를 깊이 탐구한 이유다. 연구 결과 그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해상 조난자들이 삶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육지에서 가져온 음식이 다 떨어졌더라도 한 달, 혹은 두 달 이상 생존할 수 있다.’ 장기 표류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음식물 없음’ 보다 ‘절망하지 않음’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었다. 겁먹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마음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젊은 의사의 당돌한 주장에 학계에서 거센 반박이 이어졌다. “조난자의 생명이 삶의 희망 여부에 달렸다는 주장은 단견이다.” “짠 바닷물을 마시면 갈증을 더 느끼기 때문에 죽음을 앞당긴다.” 


봉바르는 자신의 주장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스스로 실험의 대상이 되기로 결심한다. ‘물 한 방울, 음식 한 줌 갖지 않고 보트로 대서양을 건너기만 하면 나의 주장을 함부로 반박하지 못하겠지.’ 그의 모험심은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그가 인체 실험 여행에 나선 것은 1952년 10월 19일. 아내와 갓난아기 딸을 둔 봉바르의 나이는 28세. 북서 아프리카 카나리아 제도의 라스팔마스에서 출발해 중앙아메리카 서쪽 카리브해의 섬 바베이도스에 도착하는 여정이었다. 라스팔마스는 1492년 콜럼버스가 최초로 아메리카 대륙 탐험에 나선 곳이다. 


그가 준비한 배는 길이 4.6미터, 폭 1.9미터짜리 공기주입식 고무보트. 돛대를 세우고 사각 돛을 달아 ‘레레티크’라 이름 지었다. 음식물은 아무것도 싣지 않았으며 장비라고 해봐야 육분의와 작살, 갈고리가 전부였다.


출발 초기 날씨는 비교적 맑았다. 하지만 망망대해에 내리쬐는 한낮의 햇빛은 살을 태울 것처럼 강렬했다. 바닷물에 젖은 몸은 온통 소금투성이로 변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참기 힘든 갈증이었다. 바닷물이 몸에 좋을 리 없지만 생존을 위해 매일 최소한의 양을 마셨다. 그래도 목이 마르면 작살로 물고기를 잡아 그것을 비틀어 즙을 내서 마셨다. 가끔 내린 소나기는 최고의 단물이었다. 


반대로 밤이 되면 추위와 싸워야 했다. 너무 추운 나머지 몸을 웅크린 채 꼬박 밤을 새우기도 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바다는 공포를 부르지만 그것은 단단히 각오한 것이기에 견딜만했다. 끊임없는 기도가 큰 힘이 되었단다. 


날이 새면 밤새 보트 안으로 떨어진 날치를 수거하고, 그것이 부족하면 낚시를 해서 아침 식사를 했다. 옷을 찢어 만든 그물로 플랑크톤을 잡아 비타민을 보충하기도 했다. 하지만 식사량이 태부족이었기에 일주일, 10일 시간이 흐르면서 몸은 점차 여위어갔고, 피로감은 커졌다. 햇빛과 바닷물은 손과 발을 부르트게 했다.


라스팔마스를 떠난 지 53일째 되던 12월 10일, 봉바르는 대형 화물선을 만났다. 하지만 아직도 1000 킬로미터를 더 가야 한다는 선장의 말에 크게 실망했다. 그나마 갖고 탄 육분의로 방향을 잘 잡은 것은 다행이었다. 선장이 이 정도면 실험 여행이 성공적이라며 돌아가자고 권했지만 그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봉바르는 잠시지만 선원들과 대화를 나누며 외로움을 덜고, 비록 한 끼지만 따뜻한 식사를 대접받았기에 다시 힘이 생겼다. 거기다 서진하는 대서양 해류가 도움을 주고 날씨가 비교적 좋아 항해는 순조로웠다. 봉바르가 목적지 바베이도스에 도착한 것은 12월 23일 아침. 라스팔마스를 출발한 지 무려 65일 만이며, 약 4500 킬로미터를 표류했다. 몸무게가 25 킬로그램이나 빠졌지만 비교적 건강한 모습이었다.


당시 봉바르의 실험 여행은 언론에 크게 보도돼 학계는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큰 관심을 끌었다. 그의 모험적인 행동도 주목을 받았지만 인생에서 삶에 대한 자신감과 희망적인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일깨워줬다. 극한의 위기 상황에서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 세계인들에게 전한 셈이다.


그는 평범한 의사였다. 하지만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문제에 특별히 관심을 갖고, 그것을 증명하고 확인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 걸고 모험을 감행한 것은 이 세상 젊은이들에게 크나큰 귀감이다. 모험 여행은 젊은이들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다.


봉바르는 평생 모험을 즐기면서도 큰 사고 없이 비교적 장수해 81세까지 살았으며, 중노년기 10여 년간 유럽의회 의원으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참고한 책

<탐험사 100 장면> 이병철, 가람기획,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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