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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Aug 10. 2023

<16> 마음공부를 제대로 해야 하는 이유

마음 다스리는데 온 힘을 다할 것

-정약용(조선시대 실학자)의 좌우명



1801년 11월,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전라남도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시작했다. 천주교 박해에 연루돼 셋째 형은 처형당하고, 둘째 형은 흑산도 귀양 길에 올랐다. 39세 조선의 석학이 졸지에 폐족으로 전락한 것이다.


바닷가 낯선 땅 주막에서 초겨울 밤을 보낸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정약용은 1년 전 승하한 문화군주 정조에게 총애받던 고급 관리였다. 사간원 정언, 사헌부 지평, 홍문관 수찬, 병조 및 형조 참의, 좌부승지 등 그가 거친 벼슬을 꼽아보면 요즘 정치언어로 실세 중의 실세였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세상으로부터 잊히게 생겼다. 유배 생활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경우에 따라서는 갑자기 사약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얼마나 참담하고 암울했겠는가? 그 어떤 위로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얼마간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정약용은 마음공부를 시작했다. 아니 마음공부를 모든 공부의 중심에 두기로 결심했다. 송나라 유학자 진덕수의 ‘심경’을 손에 든 이유다. 이는 각종 유교 경전과 송나라 학자들의 저술에서 마음 다스리기에 도움 될만한 부분을 발췌해서 편찬한 책이다. 정약용은 책을 열심히 읽는데 그치지 않고 개별 문장마다 자신의 생각을 담아 주석을 달았다. 그렇게 탄생한 책이 ‘심경밀험’이다.


그는 ‘심경밀험’ 서문에 이렇게 썼다. “나는 지금부터 죽는 순간까지 마음 다스리는데 온 힘을 다할 것이며, 경전 공부하는 일을 ‘심경’으로 끝맺을 생각이다.” 이 말이 정약용의 좌우명이다. 그는 무려 17년 동안 계속된 유배 기간에 이 말을 끊임없이 되새기며 살았다. 그리고 마음공부에 매진했다.  


그가 마음공부에 특별히 비중을 둔 데는 혼란스러운 자기 마음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할 경우 폐인이 돼버릴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작용했을 것이다. 자신을 버린 새 임금과 조정 사람들에 대한 원망, 가문과 가족을 지키지 못한데 대한 한탄과 자책, 불투명하기 짝이 없는 미래에 대한 걱정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심경밀험’을 읽어보면 그는 욕심 내려놓기를 마음공부의 핵심으로 삼지 않았나 싶다.


정약용은 하루빨리 유배에서 풀려나 또다시 벼슬길에 나설 수 있길 기대하기보다 차제에 마음을 비우고 학문과 저술에 열중하기로 결심했다. 유배 기간을 진정한 학문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겼다. 역사에 빛나는 책을 500여 권이나 남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이런 독특한 긍정 마인드 덕분이다.


고난을 당해 앞이 캄캄할 때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가진 것 모두 잃더라도 반듯한 마음만은 잃지 않아야 한다. 잃어버렸다면 속히 되찾아야 한다. 그래야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둘 중에 하나, 세속적 욕망에서 완전히 벗어나버리거나 삶의 참된 이유를 간직한다면 위기를 능히 극복할 수 있다.


동양 최고 역사서 ‘사기’를 쓴 사마천은 궁형이라는 치욕적인 형벌을 당하고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 이유는 오로지 역사서를 완성하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정약용도 인생 최악의 상황에서 학문에 인생을 걸었다. 


둘 다 마음공부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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