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으면 새로운 길이 보인다. 독서와 여행으로 극복하길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존재이다.(요한 볼프강 폰 괴테)
*길을 잃는다는 것은 곧 새로운 길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아프리카 속담)
*끊임없이 발명하고 방황하라.(제프 베조스)
*바보는 방황하고 현명한 사람은 여행을 떠난다.(토머스 풀러)
*길이 막혔다면 원점으로 돌아가라. 미로에서 헤매느라 실마리를 찾지 못할 때는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뜻밖에 색다른 발견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쿠니시 요시히코)
주변을 둘러보면 방황하는 사람이 참 많다.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해 실의에 빠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목표 자체가 흔들려 고민하는 사람도 있다. 진학, 직업, 결혼, 종교 등을 놓고 심리적 갈등을 많이 겪는다.
방황은 사전적으로 ‘이리저리 헤매어 돌아다님’ 혹은 ‘분명한 방향이나 목표를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함’이란 뜻을 갖고 있다. 자신의 인생 북극성이 아예 보이지 않거나 갑자기 사라져 버려 당장 어디로 가야 할지 앞이 캄캄해진다. 많은 사람이 경험하지만 자기만은 피해 가고 싶은 게 방황이다. 막상 본인이 그 늪에 빠지면 인생이 고달파지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방황을 가장 많이 경험하는 연령대는 20대 중반 이후 30대 초반 아닌가 싶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대략 부모가 정해주는 길을 따라 걷다가 그 길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인생 항로를 미리 개척하지 못한 상태에서 망망대해를 만난 꼴이다.
하지만 방황하는 자신을 자책할 필요는 없다. 정도의 차이일 뿐 어쩌면 우리 모두가 방황하기에 억울해할 이유는 없다. 괴테가 소설 파우스트에서 표현한 것처럼, 인간은 노력하는 한 모두가 방황하게 되어있다. 세상 자체가 불안정하고 흔들리기 때문에 내가 흔들리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며 당연한 것이다. 흔들리는 것은 괜찮다. 침몰하거나 부서지지 않으면 된다.
특히 젊은 시절 방황은 세월 지나서 보면 더없이 아름다울 수가 있다. 방황은 자신에게서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생각지도 못한, 전혀 새로운 길을 발견하거나 더 가치 있는 길을 찾아 나서는 여정이 될 수도 있다. 비로소 자기답게 사는 길을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방황하지 않는 인생은 더 나아지려는 의지가 없음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괴테가 “더 이상 사랑도 하지 않고 방황도 하지 않는 자는 무덤에 묻히는 편이 낫다”라고 주장한 것은 이런 연유일 것이다.
국문학자 김열규 교수도 저서 ‘그대 청춘’에서 젊은이들에게 가급적 방황을 많이 하라고 조언했다. “값지고 빛나는 삶의 길은 충분한 헤맴 뒤에 그 모습을 나타낸다. 방황은 자주 상처를 입히고 때로 심장이 찢길듯한 고통을 동반한다. 하지만 그 시련의 헤맴 없이는 영광의 카네이션도 흥겨운 뱃노래도 구할 길이 없다. 조급해하지 말고 충분히 헤매고 충분히 구하라.”
방황은 일상의 매너리즘을 극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방황이야 말로 현재의 생활에 일대 변화를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헤르만 헤세가 이 부분을 정확하게 짚었다. “우리가 인생을 한 곳에 묶어두고 거기에 친숙해지는 순간 무기력감이 우리를 덮쳐온다. 언제나 떠나고 방황할 자세가 된 사람만이 ‘습관’이라는 마비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일생 동안 한 두 번 방황을 경험하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장려할 만하다. 하지만 특정 시기 방황하는 기간이 너무 길면 곤란하다. 제대로 된 삶의 방향을 찾지도 못한 채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방황의 늪을 조기에 빠져나와 새로운 길을 찾는데 독서와 여행만 한 것이 없다. 독서는 앞서간 사람들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마음의 나침반이 되어 준다. 여행은 사색의 기회를 가짐으로써 잃어버린 길 위에서 새로운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