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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Aug 24. 2023

<29> 주체적인 삶이 행복의 제1
요건이다

그대는 그대의 법을 따르라, 나는 나의 삶을 살겠다

-허균(조선 중기 문신)의 좌우명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쓴 허균(1569~1618). 그는 명나라 사신을 영접하는 종사관이 되어 폭넓은 지식과 뛰어난 글재주로 명성을 떨쳤다. 이때 누나 난설헌의 시를 사신에게 보여주며 명나라에서 출판토록 했다. 난설헌 시집은 명나라에서 ‘이백을 뒤로 물러나게 한다(고금야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극찬을 받았다. 허균은 조선 문화를 중국에 알린 공로로 삼척부사가 됐다.


하지만 부임한 지 13일 만에 탄핵을 받아 파면된다. 불교를 숭상한다는 죄목이었다. 불교 경전을 읽은 적은 있지만 심취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파면 소식을 듣고 그는 시 한 수로 분노를 삭였다. ‘그대는 그대의 법을 따르라, 나는 나의 삶을 살겠다.’ 시의 한 구절이다. 이는 그의 좌우명에 해당된다. 평생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았다. 


허균은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이다. 엄격한 규율을 요구하는 유교 사회에 살았지만 사상의 폭이 무척 넓었다. 유교를 존중하면서도 불교와 도교에 관심이 많았다.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는 천주교 서적을 가져오기도 했다.


교유의 폭도 넓었다. 승려, 서얼, 천민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기생들과의 영적 교류도 즐겼다. 이런 행적으로 인해 관직에서 네 번이나 파면당해야 했다. 명문가 출신인 데다 학문과 재능이 뛰어나 시류에 적절히 편승하면 크게 출세할 수 있었지만 관심이 없는 듯했다. 결국 역모에 휩싸여 죽임을 당하고 만다.


그가 조선 건국에 주도적 역할을 한 정도전을 유달리 존경하고, 홍길동전을 저술했다는 점에서 혁명가적 기질을 갖고 살았음이 분명하다. 당시엔 금기나 다름없었던 적서차별 철폐를 공공연하게 주장했던 사람이다.

 

우리는 허균에게서 주체적인 삶의 진면목을 본다. 그는 세상이 바람직하다고 가르치는 관점에서 벗어나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관찰했다. 삶의 태도 하나하나가 그랬다. ‘통곡헌기’라는 글에서 그는 “나는 세상이 좋아하는 것과 반대로 행하는 사람이다”라고 밝힌 적이 있다. 세상의 바람과 반대의 길을 가는 게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사람이다. 당시 사람들이 그를 이단아, 괴물이라고 평가한 이유 아닐까 싶다.


현실에서 허균처럼 살기는 쉽지 않다. 깨끗한 신작로를 두고 굳이 자갈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허균처럼 자기 삶에 부끄러움 없이 소신껏 사는 것은 멋지고 아름답다. 남이야 무슨 소리를 하든 꿋꿋이 자기 정체성을 지키며 당당하게 사는 것만큼 행복한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세상이 친 울타리에 갇히지 않으려는 삶은 누구나 부러워할 일이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라고 했다. 진정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하고 싶은 것을 바라는 어리석은 현대인의 심리를 꼬집는 말이다. 합리주의 문화에 익숙한 서양인들이 그럴진대 체면 문화에 길들여진 우리는 과연 어떨까?


삶의 가치 기준을 가급적 자기 자신한테 두고 주체적으로 사는 사람은 행복하다. 주체적인 삶이야말로 행복의 제1 요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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