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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Aug 24. 2023

<30> 제갈 길을 가라, 남이야 뭐라고 하든

모든 것은 의심해보아야 한다 

-칼 마르크스(독일 출신 사상가)의 좌우명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을 집필한 불세출의 사상가라면 엄격하고 과묵할 것이란 선입견이 생긴다. 런던의 대영도서관에 하루 10시간 이상 틀어박혀 정치경제학, 잉여가치론 따위를 연구하는 사람이니 매사에 딱딱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는 성정이 부드러운 아저씨였다. 가족을 꽤나 사랑하고 유머감각이 풍부한 아빠였다. 가족끼리 서로 별명을 부르곤 했다.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영국에서 생의 절반 이상을 보낸 정치철학자 카를 마르크스(1818~1883)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한가할 때 딸과 즉흥적인 질문을 주고받는 ‘고백놀이’를 즐겼다. 하루는 딸이 “아빠가 좋아하는 경구는 무언가요”라로 묻자 “인간에 관한 것 가운데 나와 무관한 것은 없다”라고 답했다. 또 “아빠의 인생 좌우명은 뭔가요?”라는 물음에 “모든 것은 의심해보아야 한다”라고 대답했단다. 가슴 따뜻한 대 사상가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마르크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처음엔 법학을 공부했으나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진정으로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학문 영역이 철학에 머물지 않고 역사학,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 등으로 확대됐다. 그 결과 자본주의 심화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을 생각하게 되고, 그들에 의한 혁명 불가피성을 깨닫게 된다. 


학문하는 사람에게 ‘의심’은 당연한 것이다. 근대 철학을 개척한 르네 데카르트는 “우리가 사실로 알고 있거나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상식이나 지식을 모두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상태에 이르기까지 의심해서 명백한 진리를 발견해야 한다”라고 했다. 마르크스는 자기 좌우명에 대해 데카르트의 이 ‘방법적 회의’을 염두에 두고 딸에게 대답한 것으로 보인다.


마르크스는 누구보다 소신이 뚜렷한 학자였다. 노동자 혁명과 자본주의 종말의 불가피성을 끈질기게 주장했다. 49세 때 발표한 ‘자본론’ 제1권 서문에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이 책이 지금까지 부르주아의 머리 위에 발사된 탄환 중에 가장 위력적이라는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런 말도 했다. “제갈 길을 가라, 남이야 뭐라고 하든.” 자신의 이론을 다수의 주장으로 무력화하려는 세력의 회유에 단호히 맞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제갈 길을 가라, 남이야 뭐라고 하든’ 이란 표현은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말을 마르크스가 각색한 것이다. 단테를 향한 베르길리우스의 호통, 즉 ‘왜 걸음을 멈추느냐. 지껄이도록 내버려 두고 내 뒤를 따르라. 바람이 불어도 꼭대기가 흔들리지 않는 탑처럼 굳건해야 한다’를 축약한 표현이다.


인생에서 남 말 듣지 않고 제갈 길을 가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크고 작은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고, 실패하면 그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하지만 어쩌랴, 어차피 인생이란 외로운 여정 아닌가. 삶의 목표가 다른 사람과 똑같다면 당연히 남 말 듣고 함께 가는 것이 편하고 효율적이다. 


하지만 주어진 인생을 조금이라도 독특하게 꾸밀 생각이 있다면 외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미련 없이 제갈 길을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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