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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Aug 24. 2023

<31> 12세에 인생 독립을 선언하다

남을 보기보다 나 자신을 보고, 남한테 듣기보다 나 자신에게 들으리라

-위백규(조선 후기 실학자)의 좌우명 



예나 지금이나 부모가 자녀 교육하며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남 보기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 “남들이 뭐라고 말할지 모르겠구나.”


다분히 남의 시선, 남의 평가를 의식한 말이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지라 남을 의식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주변 사람 신경 쓰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면 남에게 피해가 될뿐더러 자기 발전이 더딜 수가 있다. 때문에 부모의 그런 가르침은 잘못된 게 아니다.


문제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한 경우다. 오로지 남의 생각이나 희망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불행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기는 심리학과에 가고 싶은데 집안의 바람으로 적성에도 안 맞는 의과대학에 억지로 진학하는 경우가 그렇다. 이런 모습, 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른한테서도 종종 발견된다. 


조선 후기 전라도 장흥에 ‘인생 독립선언’을 한 소년이 있었다. 재야 실학자 위백규(1727~1798). 그는 6세 때 글을 짓고, 8세 때 주역을 공부하고, 9세 때 시를 짓기 시작한 천재다. 소년이 12세가 되었을 때 자기 좌우명이라면서 벽에다 기이한 문장을 하나 내걸었다. ‘남을 보기보다 나 자신을 보고, 남한테 듣기보다 나 자신에게 들으리라.’


그가 이런 글을 써 붙인 구체적인 이유는 전해진 바 없지만 천재 소년이 주변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기 때문 아닐까 생각된다. 아들 귀한 집안의 첫째로 태어나 특별히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니 기대가 컸을 것이다. 앞으로 무슨 공부를 어떻게 하라는 둥, 장래에 어떤 사람이 되라는 둥 어른들의 주문이 쇄도하지 않았을까 싶다.


위백규는 성리학만 익힌 게 아니라 천문, 지리, 복서, 율력, 병법, 의약, 관상학, 기술 등 다방면으로 공부해 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가 쓴 ‘환영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지리서 겸 팔도지리서이며, ‘정현신보’는 당시 관가의 부정부패를 신랄히 비판하며 제도적 개혁을 주장한 책이다. 실학자 정약용의 저술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재야 실학자로 그의 이름이 알려지자 정조 임금은 그에게 국정 자문을 하기도 했다. 이때 24권의 정책 건의서를 조정에 제출했다. 정조는 감탄하여 그를 곡성 현감에 임명했다. 위백규는 고향에 ‘다산정사’를 지어 후학을 양성하며 71세까지 살았다.


위백규의 삶은 꽤나 행복했을 것이다. 12세 어린 나이에 그토록 당당한 좌우명을 만들어 공표했으니 주변으로부터 일절 간섭받지 않고 살았으리라 짐작된다. 마음껏 공부하고 책 쓰고, 임금에게 칭송까지 받았으니 세속적으로도 성공한 인생이다.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은 결국 본인의 몫이다. 어린 나이에 부모 조언을 뿌리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하지만 나이 들면 자기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 부모 간섭은 핑계일 뿐이다. 소설가 헤르만 헤세는 평생 인생 독립선언을 하며 살았다.


 어릴 때는 “시인이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라고 했으며, 나이 들어서는 “나 아닌 어느 누구도 되고 싶지 않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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