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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Sep 04. 2023

<41> 불기자심(不欺自心)은 진리
탐구의 출발점

영원한 진리를 위해 일체를 희생한다

-성철(전 조계종 종정)의 좌우명



“하늘에 넘치는 큰 일들은 붉은 화롯불에 한 점 눈송이요/ 바다를 덮는 큰 기틀이라도 밝은 햇볕에 한 방울 이슬일세/ 그 누가 잠깐의 꿈속 세상에 꿈을 꾸며 살다가 죽어가랴/ 만고의 진리를 향해 모든 것 다 버리고 초연히 나 홀로 걸어가노라.” 


 불교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성철(1912~1993)이 출가할 때 지은 시다. 경남 산청에서 태어난 그는 지리산 대원사를 오가며 참선하다 25세 때 합천 해인사에 들어가 승복을 입었다. 이 시를 접하면 젊은 구도자의 의연한 기상이 눈에 선하다. 카필라성을 떠나는 고다마 싯다르타를 연상케 한다. 마지막 시구가 그의 인생 좌우명이다.


 성철은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자 구도에만 몰두한다. 대구 파계사 성전암에서 무려 8년간 장좌불와(長坐不臥) 한 것은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장좌불와란 오랜 시간 눕지 않고 앉아서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종정에 올라서도 일절 밖으로 나가지 않고 해인사 백련암에서 수행 정진했다. 이때 그가 던진 화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는 두고두고 화제가 되었다. 


 종정 시절 전두환 정권에 맞서 할말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그는 정치적 발언을 일절 하지 않았다. 마음 비우고 영원한 진리를 찾겠다는 초심을 지키려 한 것이다. “나는 진리를 위해 불교를 택한 것이지 불교를 위해 진리를 택한 것이 아니다.” 스스로 밝힌 출가 이유다. 20세기 최고 선승임에 틀림없다.


  불교 철학계에 돈점(頓漸)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은 진리 탐구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한국 선불교의 수행 전통으로 여겨진 지눌 선사의 돈오점수(頓悟漸修)에 반대하며 돈오돈수(頓悟頓修)를 주창했다. 성철은 돈오점수가 말하는 지(知)는 직접 체험할 수 없는 관념에 경도되어 실증성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참 지(知)가 아니라고 말한다. 지행합일 단계의 지만이 진정한 지라고 그는 주장했다.


자성(自性) 회복은 성철의 중요한 가르침에 속한다. 인간은 영원한 생명과 무한한 능력을 갖춘 절대적 존재이므로 본디 가진 이런 불성을 애써 깨우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그는 ’불기자심(不欺自心)’ 즉 자기 마음을 속이지 않는 삶을 특별히 강조했다.


해인사 백련암에 기거할 때 찾아오는 이들이 인생 좌우명을 하나 달라고 요청하면 ‘속이지 말거래이’라고 말하곤 했다. 인생에서 자신을 속이지 않는 삶이야말로 남을 속이지 않는 삶보다 더 중요하지 싶다. 자기 양심을 지키는 삶이기에 이것이야말로 진리 탐구의 출발점이라 하겠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자기기만은 끔찍한 질병”이라고 했다. 고치기 쉽지 않음을 암시한다. 너무 흔한 일이어서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자기기만은 욕망이 이성을 넘어서는 것이어서 악의 근원이 될 수 있다. 당장은 별일 없이 넘어가더라도 언젠가 큰 재앙을 부를 수 있다.


자기를 속이지 않으려면 자기 검열을 엄격하게 하는 수밖에 없다. 머리 깎고 수행하지 않더라도 가능하지 않을까? 가끔이라도 이런 기도해보면 어떨까? “나 자신을 속이지 않는 나가 되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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