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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Oct 17. 2023

<61> 자, 일을 계속하자

라보레무스(Laboremus)

-아놀드 토인비(영국의 역사학자)의 좌우명



AD 211년, 브리타니아(오늘날의 영국) 원정에 나선 로마 황제 루키우스 세베루스가 병으로 갑자기 쓰러졌다. 병석에 누워 죽어가는 상황에서 그는 군사들에게 ‘라보레무스(Laboremus)’라는 모토를 전달한 것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라틴어로 ‘자, 일을 계속하자’라는 뜻이다. 어떤 환경에서도 해야 할 일은 계속해야 한다는 다짐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역사학자이자 문명비평가 아놀드 토인비(1889~1975)는 세베루스 황제의 이 말을 무척 좋아했다. 노년에 누군가와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좌우명을 물으면 꼭 이 문구를 인용했다. 


토인비는 상아탑에 틀어박혀 연구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세계 각지를 직접 찾아다니며 정열적으로 ‘역사 현상’을 파악하려 했다. 그가 남긴 10권 분량의 역작 ‘역사의 연구’는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구상에서 연구, 집필까지 무려 33년이 걸렸다. 80세 이후 노년에도 그는 하루 종일 연구에 몰두했고, 죽어가는 병상에서도 책을 읽었다. “오늘 지금 하는 일에 온 마음을 다해야 한다.” 토인비가 자주 했던 말이다.


세베루스 황제나 토인비가 아니라도 일은 누구에게나 고귀하고 소중하다. 일하는 것이야말로 살아있다는 증거다. 자기 자신을 위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 인류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성공하고 행복하다. 임마누엘 칸트는 “일은 행복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인생이란 일상에 주어진 시간의 30% 정도는 일하도록 디자인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늘에 해가 떠있는 동안에는 일을 하는 것이 보람 있고 행복하다는 신의 가르침 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은 나를 나답게 만드는 중요한 통로이다. 일 자체가 삶의 목적이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일하는 것이 힘든가? 상황에 따라 고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천지를 창조할 때 절대자 신도 일주일에 엿새 동안 일을 했다고 생각하면 위안이 된다. 일은 희망을 가진 사람의 특권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인생에서 현실에 절망하는 사람, 절망스러운 현실을 견디지 못해 도망치려는 사람에게 일은 고통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희망을 갖고 사는 사람에겐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 사람은 일을 계속할 수 있다. 


하루 30%의 시간을 일하면서 보내야 한다면 당연히 그 일이 가치 있고 즐거워야 한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일이 즐거우면 하루하루가 기쁨이겠지만 의무라고 생각돼 지겨우면 고역일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일이 생존의 수단이긴 하지만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 


일의 가치는 스스로 찾아야 한다. 신이 천지를 창조할 때처럼 사랑과 열정이 있는 일이라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천직이 바로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일 찾기란 쉽지 않다. 세속적으로 좋다는 평가를 받는 일자리는 더욱 그렇다. 


중요한 것은 자기 마음가짐이다. 세속적 평가 따위는 내팽개칠 수 있는 베짱이 필요하다. 힘들게 거리를 청소하는 청년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으면 좋겠다. “나는 지구 청결의 사명을 갖고 일합니다.” 일은 기쁜 마음으로 계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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