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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Oct 20. 2023

<65> 신사임당이 실천한 품격

말을 망령되게 하지 말고, 기품을 지키되 사치하지 말고, 지성을 갖추되 자랑하지 말라.

-신사임당(조선시대 화가)의 좌우명



화가이자 율곡 이이의 어머니인 신사임당(1504~1551)은 현모양처(賢母良妻)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그 시대 신여성이라 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중국 고전과 서화를 공부하고, 결혼 후 상당기간 친정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남편한테 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하는 ‘잘난’ 여성이었다. 현모임에 틀림이 없지만 여필종부(女必從夫) 하던 당시 유교 사회 분위기를 감안하면 양처였다고 평가하긴 어렵다.


신사임당의 현모양처 이미지는 정치적, 학문적으로 율곡의 맥을 잇는 우암 송시열이 만들었다. 노론의 거두 송시열이 서인의 정통성 강화를 위해 스승인 율곡을 현양하면서 신사임당을 ‘성현의 어머니’로 이미지 조작을 한 것이다. 


신사임당은 굳이 현모양처가 아니라도 빼어나게 훌륭한 여성이었다. 여성이 남성의 부속물로 취급받던 시대에 남성 못지않게 수준 높은 학문을 하고, 탁월한 화가로 이름을 날렸다. 오만 원권 지폐 인물로 선정돼 우리 역사에서 전체 여성을 대표하는 인물로 자리매김한 것은 단순히 능력 때문만은 아니다. 남다른 품격을 갖추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첫머리에 소개한 문장은 신사임당이 7남매를 키우며 자녀들에게 준 특별한 가르침이다. 그녀 스스로를 향한 다짐의 말이기도 했으니 인생 좌우명이라고 해야겠다. 남편 이원수는 과거에 낙방한 뒤 젊은 술집 여자와 딴살림을 차리는 등 평생 한량으로 살았기에 자녀 교육은 사실상 신사임당이 도맡아야 했다.


그녀가 말하는 세 가지만 제대로 지키면 저절로 품격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첫째, 말을 망령되게 하지 말라고 했다. 망령이란 늙거나 정신이 흐려져 언행을 정상적으로 하지 못하는 상태를 이르지만, 여기서는 잘난 체하거나 무례하게 구는 것도 포함된다고 봐야겠다. 


또 기품을 지키되 사치하지 말라고 했다. 기품이 결코 외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간파한 듯하다. 그녀는 딸 부잣집에서 태어나 경제적으로 아무런 어려움 없이 자랐다. 그럼에도 비싼 옷을 입고 고급 음식을 먹는 사치를 경계했다. 인생 후반기에 몰아닥친 가난을 예견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또 지성을 갖추되 자랑하지 말라고 했다. 지성은 품격 있는 사람이 되는데 필수다. 하지만 그것을 남에게 자랑하면 꼴불견이다. 벼가 익을수록 고개 숙인다는 겸양의 이치를 깨달은 결과라 생각된다. 


이처럼 신사임당은 스스로 품격을 지키며 당당하게 살았기에 남편도 자신과 함께 하기를 원했다. 남편이 벼슬을 얻고자 당시 권력자였던 5촌 당숙 이기의 집에 드나드는 것을 알고 이런 말로 말렸다. 우이정이던 이기는 윤원형과 더불어 을사사회를 일으켜 많은 선비를 죽음으로 내몰아 이미지가 좋지 않았다.


“이기처럼 야박스럽게 모은 재물은 오래가지 못하고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와 도리에 어긋나면 얼마 안 가서 망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남편에게 ‘시경’을 인용해 군자의 덕을 칭송하는 시를 하나 읊어 주었다고 한다. 


“뻐꾸기 뽕나무에 앉아 있네/ 새끼는 일곱 마리/ 어지신 군자여/ 그 거동 한결같아라/ 마음도 묶은 듯 단단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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