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트루먼(미국의 제33대 대통령)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인 1945년 4월 12일. 4선 임기를 막 시작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갑자기 쓰러져 사망했다. 부통령에 오른 지 82일밖에 안 된 해리 트루먼(1884~1972)이 졸지에 대통령직을 승계하게 되었다.
그러나 트루먼은 ‘준비된 대통령’이 아니어서 워싱턴 정가가 불안에 휩싸였다. 고졸 학력에 시골(미주리 주) 출신이라 국민들도 촌뜨기 정치인으로 여겼다. 실제로 그는 미국 대통령에게 필수인 국제정치 경험이 거의 없었다. 얼떨결에 대통령이 되었으니 본인도 조금 불안했을 것이다. “달과 별, 그리고 모든 행성이 내게 떨어지는 기분이다.” 대통령 취임 때 그가 했던 말이다.
하지만 트루먼은 새로운 도전에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국정 최고 책임자답게 자신한테 주어진 주요 과제에 재빨리 결정을 내리고, 적극적으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다. 이 무렵 그의 백악관 집무실 책상에는 ‘The buck stops here’라고 새겨진 팻말이 놓였다. 이는 그의 인생 좌우명으로,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라는 의미다.
트루먼은 오래지 않아 미국 대통령으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는 역량을 발휘했다. 일본 원폭 투하, 한국전 참전, 베를린 공수작전 등은 역사적 책임을 각오한 결단의 산물이다. 재선에 성공한 것은 국민들에게 그만큼 신뢰를 얻었음을 뜻한다. 냉철한 판단력으로 전후 새로운 세계질서 확립에 제대로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평가된다.
‘The buck stops here’는 포커게임에서 나온 관용적 표현이다. 게임 참가자들이 돌아가며 딜러 역할을 할 때, 자기 앞에 손잡이가 ‘수사슴 뿔로 된 칼(buckhorn knife)’을 놓았던 데서 유래했다. 딜러로서 자기 역할을 책임지고 제대로 수행하겠다는 무언의 약속이다. 이는 그 후 미국 정치인들에게 책임감의 상징적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집무실 책상에도 이 팻말이 놓였다.
책임감은 트루먼 같은 정치인에게만 요구되는 덕목이 아니다. 사회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 그런데 매사 책임을 진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잘못된 결과에 책임지기 싫어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승리에게는 100명의 아버지가 있지만 패배는 고아이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한 말이다.
그럼에도 책임감은 애써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책임감의 있고 없음은 그 사람의 품격 여부를 결정짓는다. 자신의 선택에 의한 잘못된 결과에 책임지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것은 몰염치이자 꼴불견이다. 조직에서 이런 사람 절대로 좋은 평가받기 어렵고 성공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인생의 진로를 결정하는데도 책임감은 중요하다. 부모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현실성이 떨어지는 결정을 했다고 치자. 주인 의식을 갖고 자기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는 것은 얼마든지 좋다. 하지만 성공이든 실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본인이 책임질 각오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