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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Oct 24. 2023

<69> 옳은 것이 좋은 것이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이 좋은 것이다

-원경선(풀무원 농장 설립자)의 좌우명



일상에서 우리는 ‘좋은 게 좋다’라는 말을 흔하게 듣는다. 거리낌 없이 내뱉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동어반복인 이 문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코 좋은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앞의 좋음과 뒤의 좋음이 전혀 다른 뜻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뒤의 좋음은 정의 혹은 옳음을 의미하는, 진짜 좋음이지만 앞의 좋음은 진짜 좋음이 아닐 수 있다. 실제로는 좋지 않음에도 단순히 좋은 것처럼 보이거나 많은 사람이 좋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일 가능성이 있다. 밀실에서 협상할 때나 강자가 약자를 압박할 때 이 말이 자주 쓰인다는 점에서 옳음과는 거리가 있다.


이 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겉으로만 좋은 것이 아니라 속까지 진짜 좋은 것을 추구하며 살려고 노력한 사람이 있다. 풀무원 농장을 개척해 친환경 유기농법을 우리나라 최초로 도입한 원경선(1914~2013). 5선 국회의원을 역임한 원혜영의 아버지다. 그는 1987년, 풀무원 사업에서 손을 떼고 정치를 시작하겠다는 아들과 이런 대화를 나눴다.


-하느님 기준으로 바르게 정치할 수 있겠느냐?

“하느님 기준으로 잘할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사람의 기준으로 바르게 할 수는 있습니다.”

-정치를 하되 ‘좋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이 좋은 것이다’라는 말을 명심하거라.


원경선의 당부 말은 자신의 평생 좌우명이다. 그는 사회운동가이자 농업 기업인이다. 경기도 부천에 1만 평의 땅을 개간해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을 위한 공동체인 풀무원 농장을 조성했다. 국내 최초로 화학비료와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민 단체인 정농회를 설립 운영했다. 기업체 풀무원은 아들 원혜영이 1984년 창업한 것으로, 정치에 투신하면서 친구한테 경영 일체를 맡겼다.


원경선이 정치 시작하는 아들에게 왜 자기 좌우명을 각인시키려 했을까? 원칙과 정의를 내팽개친 채 나눠먹기 식 밀실 타협을 식은 죽 먹듯이 하는 여의도 정치판에 아들이 물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좋은 게 좋다’라는 말은 정치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표현이다.

 

이 말은 얼핏 융통성을 의미하는 것 같지만 정의를 파기하는 불의의 표현일 뿐이다. 당장 눈앞에 펼쳐진 이익이나 쾌락을 위해 정의를 포기할 경우 나중에 큰 화를 입을 수 있다. 상식과 정당성이 담보된 옳은 것이라야 안전하고 오래간다. 그것이 진짜 좋은 것이다.


아버지의 바른 가르침 덕분일까? 원혜영은 원칙을 지키면서도 협상력을 발휘하는 ‘반듯한’ 정치인으로 평가받았다. 한때 국회의장, 국무총리 물망에 오르기도 한 이유다. 인생에서 옳게만 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삶의 품격을 위해서는 누구나 애써 노력은 해야 한다.


유사 이래 소크라테스만큼 ‘옳은 삶’을 중시했던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형 선고를 받고 국외 탈출을 권하는 친구한테 이렇게 말했단다.

 

“우리는 단순히 사는 것을 소중히 여길 것이 아니라 잘 사는 것을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야 한다네. ‘잘’이란 말을 ‘아름답게’라든가 ‘옳게’라는 말로 바꾸어 놓는다면 어떻겠나? 그것도 움직일 수 없는 진리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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