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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Oct 27. 2023

<70> 최소한 부끄럽게 살지는 말라

자랑스럽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부끄럽게 살지는 말자

-한승헌(전 감사원장)의 좌우명



“자랑스럽게 사는 것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을 때 사람은 자랑스럽게 죽어야 한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주체적인 인생을 살라고 부르짖은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한 말이다. 자랑스럽게 살 자신이 없으면 당장 죽으라는 말처럼 들린다. ‘망치 든 철학자’라 불린 사람이었으니 무슨 말을 못 하겠는가?


니체에게 자랑스러운 삶이란 세속적으로 출세한 인생을 말하는 게 아니다. 양심을 갖고 명예롭게 사는 것을 뜻한다. 동양에선 호랑이가 죽어서 가죽을 남기듯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여기서 이름이란 돈이나 권력보다 명예를  뜻한다고 봐야겠다.


그런데 자랑스럽게 사는 것, 명예롭게 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크든 작든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하는 바람에 가슴에 주홍글씨를 숨긴 채 살아가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사실 그렇게 살아도 인생에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명확한 목표를 세워 한평생 실천에 옮긴 사람이 있다. 우리나라 1세대 인권 변호사로 감사원장을 역임한 한승헌(1934~2022). ‘자랑스럽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부끄럽게 살지는 말자’가 그의 좌우명이었다. 솔직하면서도 겸손한 자기와의 약속이다. 남에게 자랑할만한 삶을 살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부끄럽게 살진 않겠다는 다짐이다.  


한승헌은 인생을 올곧게 살다 간 의인으로 평가된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원칙과 정의를 지키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박정희 정부 시절 민청학련 사건, 인혁당 사건, 동백림 사건 등 굵직한 시국사건을 자임해 양심수들을 변호하고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키려 애썼다. 반공법 위반으로 감옥에 들락거리고 8년 동안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그에게 권력과의 타협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그는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을 인권 변호사라 부르지 말라고 했다. 인권 변호가 변호사 본연의 업무라는 이유에서였다. 축구선수한테 ‘공차는 축구선수’라고 부르는 사람 보았느냐고 되묻곤 헸다. 한승헌은 적재적소에 유머를 날릴 줄 아는 멋쟁이 변호사이기도 했다. 유신 시절 시국사건과 관련해 법원이 매번 검사 구형대로 선고하자 “우리나라 정찰제는 백화점이 아니라 법정에서 비롯됐다”는 유머를 구사했다. 


그의 삶은 부끄럽지 않은 것이 아니라 충분히 자랑할만한 것이었다. 현실에서 한승헌과 같은 삶을 따르긴 쉽지 않다. 그럼에도 그처럼 노력은 해봐야겠다. 이 세상 떠날 때 한숨 쉬며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부끄럽지 않은 삶의 요체는 자기 양심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사실 최소한의 양심만 지키더라도 보통은 된다. 명예가 어느 정도 유지되기 때문이다. 거짓 언행을 일삼고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속이고 사는 사람이 문제다. 하지만 그런 사람 머지않아 사회로부터 반드시 배척당한다. 세상 모든 사람을 속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심과 명예는 같은 뿌리를 하고 있다. 


“명예는 밖으로 나타난 양심이며 양심은 안에 깃든 명에이다.”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가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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