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익(조선 중기 문신)의 좌우명
모녀의 10년 전 대화 모습이 떠오른다. 엘리베이터에서 초등학교 1학년 소녀와 엄마가 이런 얘기를 나눴다. 소녀의 얼굴은 무척 밝아 보였다.
-엄마, 오늘 나 받아쓰기 100점 먹었어.
=그래? 정말 잘했다. 우리 딸 최고!
-엄마, 100점 먹으면 피자 사준다고 약속했지?
-당연하지. 그런데 100점이 몇 명이야?
=어어, 그런데 오늘은 100점이 조금 많긴 해.
모녀간 대화는 여기서 뚝 끊겼고, 아이는 시무룩해졌다. 이웃집 아저씨가 “받아쓰기 100점은 정말 잘한 거야”라고 수습에 나섰지만 소녀의 얼굴엔 이미 깊은 그늘이 생겼다. 약속대로 엄마는 피자를 사줬겠지만 그 집 식탁이 그다지 행복했을 것 같지는 않다.
행복을 원한다면 남과의 비교는 금물이다. 아이든 어른이든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은 행복을 스스로 내쫓는 일이다. 비교하다 보면 남보다 부족하고 초라한 것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돈, 직장, 외모, 학력, 지식, 친구 등 모든 것이 비교 대상 아닌가. 모든 게 1등이 아닌 이상 시기질투심이 생기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비교하지 않아야 만족할 수 있고, 만족해야 감사한 마음이 생기며, 그럴 때라야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습관적으로 남과 비교하는 사람은 자칫 자신감과 자존감마저 잃을 수 있다. 이는 자기 발전을 도모하는데 장애가 된다. 이웃 사람을 쳐다볼 것이 아니라 거울 속의 자신을 들여다보는 습관을 가지면 어떨까? 모든 꽃은 피고지는 속도가 다르다. 굳이 비교할 것 없다. 남과 비교할 게 아니라 오로지 과거의 나와 비교하며 담대하게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남과 비교하는 습관을 떨쳐버리기 어렵다면 조선 중기 문신 이원익(1547~1634)의 좌우명을 되새기면서 살아보면 어떨까? “뜻과 행동은 나보다 나은 사람과 비교하고, 분수와 복은 나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하라(志行上方, 分福下比)”
남과 비교하되 제대로 비교하며 살겠다는 선비의 굳은 각오다. 좋은 뜻과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나보다 훌륭한 사람을 멘토로 삼아 따르겠다는 다짐이다. 반면 누리는 혜택은 욕심부리지 않고 나보다 부족한 사람의 수준에서 대략 만족하겠다는 생각이다.
이원익은 평생 자기 좌우명에 충실히 따르며 살았다. 그는 선조, 광해군, 인조 3대에 걸쳐 다섯 번이나 영의정을 지내는 등 조선 중기 정치와 행정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다. 당파 이익에 매몰되지 않고 바른 길을 걷고자 노력했다. 전혀 다른 정치세력에 의해 왕위에 오른 광해군과 인조가 첫 영의정으로 공히 그를 선택한 이유다.
그는 또 청빈을 실천했다. 노후에 두 칸짜리 오두막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임금이 알고 집을 하사할 정도였다. 현재 경기도 광명에 있는 관감당(觀感堂)이 그것이다. 당연히 역사에 기록된 쳥백리이다.
이원익이 지칭한 분수와 복은 요즘 말로 수입이나 재산을 뜻한다. 그는 아마 재물에 욕심부리지 않고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행복이 만족과 감사의 산물임을 제대로 깨달은 사람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