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광(조선 중기 문신)의 좌우명
고대 로마의 서정시인 퀸투스 호라티우스는 “오늘을 붙잡아라, 내일이라는 말은 최소한으로 믿으라”라고 했다. 라틴어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말한다. 5세기 초 인도 시인 칼리다사는 “오늘을 잘 살펴라, 오늘이 바로 인생이요 인생 중의 인생이다”라고 노래했다.
러시아 작가 레프 톨스토이는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있는 것은 현재뿐이다, 현재의 삶은 매 순간이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다”라고 했다. 또 네덜란드 출신 천주교 사제 헨리 나우웬은 “순간순간을 최대한 충만하게 살고, 우리가 지금 있는 곳에 주의를 기울이면 행복할 것이다”라고 설교했다.
동서고금의 시인도, 소설가도, 영성 지도자도 한결같이 오늘, 그리고 현재를 잘 살라고 했다. 행복이 무엇인지,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답을 찾기 위해 평생을 연구한 수많은 철학자들, 이 시대 긍정심리학자들도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행복을 위해서는 과거를 원망하거나 후회하지 말고, 미래를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란다.
로마나 인도, 유럽에 갈 것 없이 조선의 선비 이수광(1563~1628)도 이런 행복론을 갖고 살았다. 첫머리에 소개한 문장은 그가 스스로를 경계하며 쓴 글 ‘자경(自警)’에 나오는 표현으로, 자신만의 행복론이자 좌우명인 셈이다. 실학의 선구자답게 현재를 충실하게 살라고 했다.
이수광의 이런 삶의 태도는 성리학자로서 관념적 전통에 머물지 않고 실천 철학을 꾸준히 추구한 데서 확연히 드러난다. 그는 명나라를 세 차례 방문하며 서양 학문을 깨우쳐 조선 조정에 전하려고 애썼다. 천주실의를 소개하고 교황의 존재를 처음 알린 사람도 이수광이다. 그곳에서 베트남, 오키나와, 태국 사신들을 적극적으로 만나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기도 했다.
그의 역작 ‘지봉유설’의 저술 과정을 살펴보면 하루하루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며 살았는지 알 수 있다. 52세 때 완성한 이 책은 우리나라 최초의 문화백과사전이다. 평생 수집한 다양하고도 방대한 자료와 명나라 방문 때 얻은 새로운 지식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편찬한 책으로, 20권 3435 항목이나 된다. 당시의 천문, 역사, 지리, 정치, 경제, 인물, 시문, 언어, 복식, 동식물 등을 총망라했으며 등장인물이 무려 2265명이나 된다.
이수광은 지난 일을 염두에 두지 말고 다가올 일도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오직 현재에 집중해서 그것을 굳게 지키라고 했다. 당시의 성리학적 세계관이나 철학에 어울리지 않는 태도이다. 공리공론이 만연하던 시대에 선비로서 현재에 올인하다가는 속물 취급받기 일쑤다. 하지만 그가 살던 시대는 임진왜란 등 국란이 극심한 때라 실용적 실리 추구가 다소 힘을 얻었으리라 짐작된다.
21세기 지금은 더더욱 현재가 중요하다. 오늘, 그리고 현재를 충만하게 살아야 과거를 아름답게, 미래를 찬란하게 꾸밀 수 있다. 행복은 그럴 때 슬며시 다가온다. 누구에게나 행복은 지금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