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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Nov 02. 2023

<74> 인내와 용서를 실천한 고품격 여인

나는 빛과 평화를 가져온다

-카테리나 데 메디치(프랑스의 왕후)의 좌우명



종교혁명 시기 프랑스 앙리 2세의 왕후였던 카테리나 데 메디치(1519~1589)는 인내와 용서로 행복을 지킨 고품격 여성이다.


그녀는 이탈리아 피렌체 공화국의 메디치 가문 상속녀였지만 정략결혼으로 프랑스 발루아 왕가로 시집을 갔다. 하지만 동갑내기 남편이 19세 연상의 애첩 디안 푸아티에한테 푹 빠지는 바람에 외로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 남편은 형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왕세자에 이어 국왕 자리에까지 올랐으나 왕후를 외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푸아티에는 그녀를 ‘이탈리아 장사꾼의 딸’이라며 조롱하고 경멸했다. 푸아티에가 권력의 중심에 서 있는 동안 신하들도 모두 그녀를 외면했다. 왕이 바깥으로 행차할 때도 푸아티에가 왕과 나란히 서고 카테리나는 시녀들과 함께 뒤따라야 했다. 하지만 카테리나는 계속되는 치욕을 의연하게 참아냈다. 우아함을 잃지 않고 왕후로서의 품격을 꿋꿋이 지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앙리 2세가 전쟁종식 축하연에서 마상 창 시합을 하다 크게 다쳐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어린 장남이 곧바로 국왕 자리를 이어받게 되었다. 유혈 복수극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카테리나는 용서와 화합을 선택했다.


“이제 프랑스의 섭정 왕후가 된 나 카테리나는 디안, 너를 용서하노라. 여기 죽어가는 내 남편이 너를 사랑했기에 나도 너에 대한 사랑을 이어가리라.”


그녀의 이런 담대한 결심은 도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오랫동안 부부 잠자리를 가로채고, 자신을 공개적으로 모욕한 연적(戀敵)을 용서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녀의 좌우명에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카테리나에게는 프랑스로 시집올 때 마음에 새긴 문장이 하나 있다. “나는 빛과 평화를 가져온다.” 자기 손으로는 어둠과 싸움을 절대 가까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남편 사후 아들 셋이 잇따라 왕이 되어 통치하는 동안 정치외교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유럽을 좌지우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기간 카테리나는 관용과 포용의 자세를 견지했다. 종교혁명 초기 가톨릭과 개신교가 극심하게 대립했지만 화해를 통한 평화를 꾸준히 시도했다. 아들들이 무능한 탓에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대화의 끈을 이어가려고 무진 애썼다.


카테리나의 인내심과 용서하는 자세는 메디치 가문의 명성을 드높였다. 그리고 외국에서 시집왔지만 애국심을 발휘해 종교혁명 와중에도 온전히 프랑스를 지키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용서하는 마음은 행복을 찾는데 중요한 덕목이다. 상대방 잘못에 대해 원한을 품고 살 경우 내가 불행하기 때문이다. 터놓고 화해하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담대하게 용서해 버리는 것이 자신을 위해 나을 수도 있다. 용서를 자기한테 주는 선물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용서는 패배나 나약함의 표시가 아니다. 불행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용감한 자가 선택할 수 있는 미덕이다. 거기다 용서는 미래를 담보하는 것이어서 좋다. 버나드 멜처는 이런 말을 남겼다.


“당신이 용서하면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확실히 미래는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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