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독립유공자)의 좌우명
천년 고도 경주에 가면 최 부잣집이라 불리는 고택이 있다. 반월성과 첨성대에 인접한 교동 한가운데 자리 잡았지만 특별히 웅장하지는 않다. 품격이 느껴지는 기와집일 뿐 칸 수가 그다지 많지 않아 만석꾼 집으로는 오히려 초라해 보인다. 그러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했던 사람의 집으로 알려져 여행객들의 발길이 잦다.
최 부자란 고운 최치원 선생의 후손으로, 임진왜란 때 왜적에 맞서 싸운 1대 최진립을 시작으로 일제시절 독립자금을 댄 12대 최준(1884~1970)까지의 가문을 말한다. 마지막 최준은 임시정부에 엄청난 액수의 자금을 지원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언젠가 “임시정부 자금의 6할은 최준의 주머니에서 나왔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러나 최 부잣집의 명성은 독립자금 지원보다 이른바 육훈(六訓)에 기인한다. 서두에 소개한 그대로다. 대를 이어 수백 년 동안 큰 부자로 살았지만 이 육훈에 따라 더 이상 욕심부리지 않고 궁핍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었기에 인심을 얻었다. 여느 지주들과는 달리 오히려 크게 칭송받았다.
육훈을 보면 조선시대 양반, 부자 가문에서 좀처럼 실천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첫째 조항,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하지 말라는 것은 큰 벼슬 탐내지 말라는 뜻이다. 벼슬이 더없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세상이지만 돈이 많으므로 권력이나 명성까지 얻으려고 발버둥 치지 말라는 의미다. 예나 지금이나 성공의 세 가지 요건이라 불리는 돈, 권력, 명성을 다 가지려다 패가망신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되새겨 볼만한 말이다.
재산을 만석 이상 지니지 말라는 것은 지나치게 욕심부리지 말라는 경고다.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고, 흉년기에 땅을 사지 말고,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말은 나눔, 특히 긍휼을 실천하라는 명령이다. 그리고 며느리들에게 무명옷을 입으라는 것은 검약하라는 뜻이다.
최 부잣집 사람들은 고귀한 신분에 상응하는 윤리적 책임과 의무를 뜻하는 프랑스어 표현,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목숨까지 내놓은 것은 아니지만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 칼레의 시민대표들, 타이타닉 호 침몰 때 구명정 탑승을 양보한 백만장자 노부부의 그것에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최 부잣집처럼 돈이 많아야겠지만 지금도 이런 자세로 산다면 모든 사람에게 존경받을 것이다. 현재 가진 재산과 권력에 적절히 만족하며 욕심부리지 않고 검약한 생활을 한다면 절로 품격이 느껴질 것이다. 또 자신의 이런 모습에 참된 의미를 부여한다면 스스로 행복할 것이다.
최준은 광복 후 선조들이 300년 이상 대대로 소유했던 땅을 모두 팔아 교육사업에 기부했다. 1947년 대구대학(영남대학의 전신) 설립이 그것이다. 자발적으로 재산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백만 평 가까운 최 부잣집의 금싸라기 땅은 진작 사라졌지만 그 명성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