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사회를 위해 존재한다.
-유일한(유한양행 창업주)의 좌우명
안티푸라민, 삐꼼씨 등을 생산하는 제약회사 유한양행은 우리나라 기업 역사에서 선진 윤리경영의 선두주자다. 종업원지주제도(1936년)와 전문경영인제도(1969년)를 최초로 도입했다. 창업주 유일한(1895~1971)이 자기 좌우명이자 기업이념인 ‘기업은 사회를 위해 존재한다’라는 원칙을 발 빠르게 시행한 결과다.
유일한은 독립운동가, 기업인, 교육자, 자선사업가로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다 간 선각자다. 평양 출신으로 어릴 때 미국으로 건너가 박사학위까지 받은 그는 그곳에서 자그마하게 식품사업을 하다 귀국해 1926년 유한양행을 설립했다.
유일한은 정도 경영을 몸소 실천했다. 세금을 철저하게 내고, 수익은 종업원들에게 돌리고, 더 많이 남으면 사회에 환원한다는 원칙을 지켰다. 박정희 정부 때 정치자금을 내지 않아 괘씸죄에 걸려 세무조사를 받았으나 너무 깨끗한 것으로 드러나 오히려 훈장을 받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등 여러 기관에 거액을 기부했다.
유일한의 ‘기부 전설’은 가진 것을 모두 사회에 환원한다는 유언장에 새겨졌다. 76세 일기로 별세한 뒤 공개된 유언장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대기업 창업주의 유언으로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는 없다. 아홉 살짜리 손녀가 제일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대학졸업 때까지의 학비로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나마 1만 달러를 챙겨줬다. 맏이인 딸에게는 자기가 세운 학교 내 땅을 물려주면서도 주인 행세를 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늙은 아내는 딸에게 부양을 맡기는 한편, 하나뿐인 아들에겐 대학공부 시켜줬으니 자립하란다.
두 자녀는 아버지의 유언을 철저히 지켰으며,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는 유한양행에는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유일한의 여러 동생들과 조카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유한양행은 창업주 좌우명대로 그야말로 사회를 위한 기업으로 일찌감치 자리매김했다.
유일한은 기업이 창업자 개인의 것이 아님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정도 큰 기업이라면 딸이나 아들, 아니면 동생이나 조카한테라도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경영권만 갖고 있으면 평생 동안 떵떵거리며 살 수 있으니 말이다. 아들 유일선은 한때 아버지 밑에서 부사장 직을 맡은 적이 있다. 하지만 죽음을 앞두고 아들을 비롯한 친인척들을 모두 회사에서 내보냈다.
유일한은 인생에서 돈보다 삶의 의미를 중시한 사람이다. 그는 이런 기도를 즐겨했다고 한다.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고, 오늘 저희에게 주어진 것들을 충분히 즐기며, 명랑하고 친절하고 우애를 다질 수 있는 능력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