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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Nov 30. 2023

<87> 두 손 중 하나는 남을 위한
손이다

한 손은 너 자신을 위한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남을 위한 손이다.

-오드리 헵번(할리우드 여배우)의 좌우명



20세기 할리우드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세기의 연인’ 오드리 헵번(1929~1993)도 모진 병마를 비켜가진 못했다. 죽기 한 달 전인 1992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자신을 찾아온 아들 션 헵번에게 장문의 시가 적힌 편지를 쥐어주었다. 결장암으로 온몸에 힘이 쫙 빠진 상태였다.

 

“매혹적인 입술을 갖고 싶다면/ 친절하게 말을 하라/ 사랑스러운 눈을 갖고 싶다면/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보아라/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다면/ 네 음식을 배고픈 사람들과 나누어라/ 윤기 나는 머리카락을 갖고 싶다면/ 하루에 한 번 아이의 손으로 쓰다듬게 하라/ 아름다운 자세를 갖고 싶다면/ 네가 결코 혼자 걷지 않을 것임을 명심하며 걸어라/ 기억하라/ 만약 네가 도와줄 수 있는 손이 필요하다면/ 너의 팔 끝에 달린 손을 이용하라/ 네가 더 나이를 먹는다면/ 너의 손이 두 개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한 손은 너 자신을 위한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남을 위한 손이다.”


샘 레벤슨이 쓴 ‘시간이 검증한 아름다움의 비결(Time tested beauty tips’이란 시다. 헵번이 은막을 떠나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설 무렵부터 남달리 좋아했던 시로 인생 좌우명이라고 해야겠다. 죽음을 앞두고 아들에게 전했으니 유언이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시의 주제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사랑과 자선이다. 


헵번의 영화계 은퇴 후 삶은 이 시를 쏙 빼닮았다. 평소 이런 생각을 가졌기에 이 시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아니면 이 시를 읽고 갑자기 영감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의 인생 말년은 자선활동 그 자체였다.


헵번은 분쟁지역 어린이들을 돕고 싶다며 느닷없이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를 찾아간다. 영화 ‘로마의 휴일’과 ‘티파니에서 아침을’ 등으로 쌓은 명성이 워낙 높아 유니세프로선 여간 환영할 일이 아니었다. 1988년 3월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임명되자마자 그녀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등 아프리카 각지를 다니며 질병과 기아에 신음하는 어린이들을 만났다. 돌아와서는 미국과 유럽 각국을 쉼 없이 돌며 자선기금 모금 행사를 가졌다.

 

그녀는 4년여 동안 50차례 이상 재난지역으로 구호여행을 다녔다. 과로로 인해 몸이 상했음을 느꼈을 때는 이미 결장암이 온몸으로 퍼진 뒤였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그녀는 구호여행을 계속했다. 1992년 9월 소말리아에서 눈이 푹 패인 얼굴로 굶주림에 지친 어린아이를 꼭 안고 찍은 사진은 세계인들에게 나눔의 필요성을 새삼 깨닫게 했다.


헵번은 1993년 1월 스위스 자택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세계 각지에서 달려온 동료 배우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녀의 자선을 칭송했다. “하느님이 가장 아름다운 새 천사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천국에서 또 어떤 착한 일을 할지 누가 압니까?”(엘리자베스 테일러) “공주가 마침내 여왕이 되었습니다. 영화에서뿐만 아니라…”(그레고리 펙)


그렇다. 자선하는 헵번은 영화배우 헵번 못지않게 화려했다. 삼성이 1990년대 기업 이미지 광고 때 사용했던 문구가 이를 잘 표현했다. 


“우리가 가장 아름다운 오드리 헵번을 만난 것은 ‘로마의 휴일’이 아닌 아프리카에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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