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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Dec 01. 2023

<88>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

신발을 한꺼번에 두 켤레 신을 수는 없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 그리고 천국에서는 돈이 필요 없다.

-척 피니(면세점 업체 DFS 창업주)의 좌우명



세계 30위권 부자인 대기업 회장이 구두쇠로 소문나있었다. 모든 직원에게 이면지를 쓰게 하고, 변호사 수임료를 악착같이 깎으려고 했다. 비행기는 이코노미석을 고집했고, 경제인 모임에 참석해서는 밥값 계산하지 않으려고 일찍 자리를 뜨곤 했다. 미국의 면세점 업체 DFS를 창업한 척 피니(1931~2023)를 두고 한 말이다.


DFS가 1997년 면세점 매각 과정에서 법적 분쟁에 휘말렸다. 그로 인해 비밀 회계장부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뉴욕 컨설팅 회사’라는 이름으로 15년 동안 2900회에 걸쳐 5조 원 가까이 지출된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당연히 거액의 재산을 빼돌린 것으로 추측됐다.


하지만 곧 지출액 모두가 기부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1982년 비밀리에 재단을 설립해 전 세계 수많은 기관, 단체에 자기 재산의 99%를 기부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후에도 그는 기부를 계속했으며, 2023년 10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기부한 돈은 총 10조 원에 육박한다. 5명의 자녀들에게 26억 원만 물려주고 나머지는 전액 사회에 환원한 셈이다.


기부왕 척 피니에겐 특별한 좌우명이 있었다. 첫머리에 소개한 문장이 그것이다. 죽어서 입는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고 천국에선 돈이 필요 없다는 사실, 그걸 누가 모르겠는가? 모든 사람이 그걸 알면서도 거의 모든 사람은 죽는 날까지 돈에 집착한다. 피니는 그런 집착에서 깔끔히 벗어났기에 뒤따르는 사업가들에게 귀감이 된다. 빌 게이츠는 그를 자신의 롤 모델로 여긴다.


피니는 죽어서 기부하는 것보다 살아서 기부하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말한다. 당연한 말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살아생전 남을 도울 때 가장 덕 보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일 것이다. 피니는 평소 이런 말을 즐겨했다.


 “부호 명단에서 빠지고 싶다면 첫째 돈을 잃거나, 둘째 남에게 줘버리거나, 셋째 죽는 수밖에 없다. 그러데 첫째 경우는 생길 것 같지 않고, 셋째 경우는 당장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둘째 경우만 남는다.”


‘수의에 주머니가 없다’라는 말을 들으면 이런 우스개 소리가 떠오른다. 현대 정주영 회장이 저 세상에 갔더니 삼성 이병철 회장이 반기면서 이런 말을 했단다. “이 사람 마침 잘 왔네. 만원만 좀 꾸어주게. 내가 여기 올 때 단 한 푼도 못 가지고 왔거든.” 천국엔 돈이 필요 없다는데 웬일일까? 이에 정 회장이 “아이고 형님 저도 빈손으로 오는 바람에 방법이 없습니다”라고 했단다.


인생에서 돈이란 반드시 필요한 게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헛되고 헛된 것인지도 모른다. 척 피니는 돈에 대해 정말 초연했던 것 같다. 그의 삶은 참으로 검소했다. 젊은 시절에도 줄곧 그랬지만 죽는 날까지 방 두 개짜리 소형 임대아파트에 살았으며, 2만 원짜리 손목시계에 만족했다고 한다.


이런 사람을 구두쇠라고 손가락질했으니 우리 모두 부끄러울 따름이다. 피니는 비록 전 재산을 사회에 내놓고 갔지만 마음은 영원한 부자라고 해야겠다. 황제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남긴 말을 음미해 본다.


“당신이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부는 당신이 누군가에게 선물한 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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