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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May 10. 2021

3-6 친구는 식탁이요 화로다

내가 선택한 가족. 신뢰와 예의 갖춰야 좋은 친구 생겨

<우정에 대한 명언>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 가족이라면 친구는 내가 선택한 가족이다.(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친구는 여러분이 사랑으로 씨 뿌리고 감사함으로 거두어들이는 밭이다. 그는 또 여러분의 식탁이요 화로다. 여러분이 배고플 때와 포근함이 필요할 때 찾아가기 때문이다.(칼릴 지브란)

*사람들은 누구나 친구의 품 안에서 휴식을 구하고 있다. 그곳에서라면 가슴을 열고 마음껏 슬픔을 털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요한 볼프강 폰 괴테)

*벗이 없으면 이 세계는 황야에 지나지 않는다.(프랜시스 베이컨)

*우정은 천천히 익는 과일이다.(아리스토텔레스)


<생각 나눔>


“친구는 내가 선택한 가족이다.” 


19세기 미국 자연주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데이비드 소로우가 친구와 우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한 말이다. 친구가 부모형제처럼 혈연적, 선천적 요소로 맺어진 것은 아니지만 가족 못지않게 귀한 존재임을 이토록 멋지게 표현했다.

 

그렇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그 수가 많든 적든, 우정의 깊이가 깊든 얕든 여러 친구를 사귀게 된다. 특히 각급 학교와 직장을 통해 만남이 이뤄지기 때문에 친구 없이 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가족을 중시하거나, 가족관계가 원만한 사람에게는 친구의 비중이 다소 작겠지만 대다수는 친구를 통한 우정을 가족애 못지않게 중시한다. 하지만 성격이나 근면성 차이로 인해 친구를 많이, 잘 사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후자의 경우 외로움을 호소하기 십상이다.

 

친구가 많아서 걱정할 일은 별로 없다. 그중에는 좋은 친구도 있을 것이기에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적다고 걱정할 일도 아니다. 진정한 친구 한 두 명만 있어도 최상의 만족감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많은 벗을 가진 사람은 한 사람의 진실한 벗을 가질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다.


실제로 친구는 그 숫자보다 우정의 질이 더 중요하다. 참된 친구가 아닌 친구는 사실 별 의미가 없다. 오다가다 만나는 사람과 크게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좋은 친구, 참된 친구란 영혼이 서로 교감할 수 있는 사이 라야 한다. 성격이나 취미, 생활태도의 동질성은 기본이고 영혼의 울림이 있어야 깊은 우정을 나눌 수 있다. 현실적으로 그런 친구 많기는 어렵다.


사람들은 흔히 친구는 죽마고우(竹馬故友)라고, 만난 지 오래될수록 좋다고 말한다. 대학이나 직장에서 사귄 친구보다 어릴 적 고향 친구가 좋다고 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현인들의 명언도 많다. “우정은 천천히 익는 과일이다.”(아리스토텔레스) “진실된 우정이란 느리게 자라나는 나무와 같다.”(조지 워싱턴) “정말 좋은 친구는 일생을 두고 사귀는 친구다”(피천득)


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닐 성싶다. 지식이나 사회적 관심사를 놓고 교감하는 데는 나이 들어 만난 친구가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러니 지금 좋은 친구 없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당장 사귀면 된다.

 

‘사기’를 쓴 사마천이 용기를 준다. “머리가 하얗게 될 까지 만났는데도 여전히 낯선 사람이 있고, 비가 와서 잠깐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면서 우산을 함께 썼을 뿐인데도 오래 사귄 친구처럼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좋은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는 애써 노력해야 한다. 가만히 있는데 좋은 친구가 다가오는 경우는 드물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시 신뢰 아닐까 싶다. 오륜(五倫)에서 붕우유신(朋友有信)이라 했듯이 친구 사이에 믿음이 조성되지 않으면 지속되기 어렵다.

 

예의도 중요하다. 모든 사람과의 관계가 그렇지만 친하다고 해서 함부로 대해서는 절대 안 된다.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고 예의를 갖출 때 진정한 우정이 생긴다. 나를 낮추고 상대방을 높이는 겸손함이 필요한 지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친구란 서로 통해야 친해진다. 내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춰야 하는 이유다. “좋은 친구를 만나려면 먼저 나 자신이 좋은 친구 감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친구란 내 부름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이다.” 법정 스님의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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