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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Jul 11. 2021

5-2 내 운명의 주인은 바로 나다

운명은 얼마든지 극복 가능하며, 자기 마음가짐이 그 열쇠다

<운명에 관한 명언>


*인간은 각자 모두 자신의 운명을 손에 쥐고 있다. 완전히 자신의 작품이며 자신의 것인 생활을 창조하지 않으며 안 된다.(헤르만 헤세)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고 내 영혼의 선장이다.(윌리엄 헨리)

*당신은 당신 운명의 건축가이고 당신 운명의 주인이며 당신 인생의 운전자이다.(브라이언 트레이시)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운명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다.(요한 볼프강 폰 괴테)

*자기 앞에 어떤 운명이 가로놓여 있는가를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그리고 대담하게 자기 운명에 도전하라.(오토 폰 비스마르크)



<생각 나눔>


행복을 이야기할 때 운명이 화제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각자 타고난 운명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에 관한 문제다. “너는 성공할 수밖에 없는 사주팔자를 타고났어.” “나는 좋은 운이 아니어서 무슨 일을 해도 안돼.”


인생을 살면서 운명에 순응해야 하는가, 아니면 저항해야 하는가. 운명이란 게 있긴 한가. 각자의 성장 배경, 종교, 성격, 전공 등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표출된다. 철학관이나 타로 같은 점집을 자주 찾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철저하게 무시하는 사람도 있다.

 

운명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해 이미 정해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를 말한다.(표준국어대사전) 운명에 대한 관심은 명리학의 영향인 듯 서양에 비해 동양이 더 많은 편이다. 명리학이란 사주에 근거하여 사람의 길흉화복을 알아보는 학문이다.


솔직히 나는 명리학에 별 관심이 없다. 사서삼경 중 하나인 주역을 근거로 생겨난 학문이지만 특정인의 길흉화복이 사주, 즉 태어난 해 월 일 시에 의해 결정된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명리학 연구자들은 정교한 과학이라고 주장하지만 내게는 공허하게만 들린다. 그렇다고 막무가내 비판할 생각은 없다.


다만 주어진 운명에 순응해야 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데 소극적으로 임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라 말하고 싶다. 삶을 설계해서 막 건축을 시작한 젊은이들에겐 특히 그렇다. 다행히 우리보다 먼저 살다 간 수많은 현인들이 운명의 주인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며 극복하라고 용기를 주었다.

 

로마 철학자 세네카는 운명이 주어지기보다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운명이란 외부에서 오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자기 자신의 약한 마음, 게으른 마음, 성급한 버릇, 이런 것들이 결국 운명을 만든다. 어진 마음, 부지런한 습관, 남을 도와주는 마음, 이런 것들이야말로 좋은 운명을 여는 열쇠다. 운명은 용기 있는 사람 앞에서는 약하고 비겁한 사람 앞에서는 강하다.”

 

운명의 출발점은 자신의 믿음이다. 운명으로부터 받은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소중히 여겨 갈고닦으면 더욱 빛날 것이란 믿음을 가질 때 비로소 운명은 내 편이 되어 줄 것이다. 마하트마 간디의 말을 들어보자. “당신의 믿음은 생각이 되고 생각은 말이 되고 말은 행동이 되며 행동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가치가 되고 그 가치는 당신의 운명이 된다.”


“타고 난 사주는 바꿀 수 없지만 팔자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누구나 아는 우리 속담이다.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결국 운명도 바꿀 수 있다는 뜻 아닌가. 타고난 운명이 반드시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은 명리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다.

  

운명이 바뀔 수 있고, 그 열쇠를 자기 자신이 갖고 있다면 무엇이 두려운가.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는 것은 운명에 저항하는 일이다. 운명에 순응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저항할 필요도 없다. 오로지 슬기롭게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 정답이다.


세상사 모든 게 마음먹기 나름 아닌가. 운명도 마찬가지다. 행복을 위해서는 이런 마음가짐이 참으로 중요하다. “삶의 질은 삶에서 얻는 것보다는 당신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더 크게 좌우된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보다는 당신의 마음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더 크게 좌우된다.” 중동의 현자 칼릴 지브란의 통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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