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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Aug 27. 2021

<1> 내 인생 내가 가꾼다

세상이 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행복한 사람이돼라

“지식은 전할 수 있어도 지혜는 전할 수 없다네. 지혜란 찾아낼 수 있고 체험할 수도 있으며 그것을 따를 수도 있고 그것으로 기적을 행할 수도 있지. 그러나 말로 표현하거나 가르칠 수는 없는 법이네.”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권혁준 옮김, 문학동네)



반항과 자아실현을 노래한 헤르만 헤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에 속한다. 셰익스피어나 괴테에 못지않다. 중고교생 권장도서 1호라 할 수 있는 소설 ‘데미안’ 덕분 아닐까 싶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 데미안을 최고의 성장소설로 만든 멋진 문장이다.


데미안이 10대 청소년을 위한 성장소설이라면 헤세의 또 다른 소설 ‘싯다르타’는 청년, 혹은 어른을 깨우치게 하는 성장소설이다. 내용을 짧게 요약하면 이렇다.


주인공 싯다르타는 인도 브라만 집안에서 자란 훌륭한 청년이다. 부모를 비롯한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주지만 정작 자기는 아무런 즐거움을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친구 고빈다와 함께 깨달음을 위한 숲 속 고행길에 나선다. 절대자인 부처(고타마)를 만난 상황에서 친구는 부처를 따르지만 싯다르타는 사변적 가르침으로는 해탈할 수 없다는 생각에 체험을 위한 독자 수행을 계속한다.


도시로 내려온 싯다르타는 미모의 여인 카말라를 알게 되고, 상인 카마스바미를 만나 사랑과 부의 희열을 만끽하지만 오래지 않아 허무를 느끼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다. 고뇌의 세계에서 벗어나 뱃사공 바수데바와 더불어 강가에 살면서 자기 성찰의 과정을 밟는다. 어느새 뱃사공으로 변신한 싯다르타는 한때의 연인 카말라를 만났으나 곧 그녀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즈음 그는 영원한 흐름의 상징인 강가에서 신성한 소리 ‘옴’을 발견하고는 일상의 모든 애욕과 속박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얻는다. 


소설 싯다르타는 데미안 발표 3년 만인 1922년에  나왔다. 두 소설을 함께 읽다 보면 데미안에서 대학생 군인으로 성장한 주인공 싱클레어가 어느새 청년 싯다르타로 변신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두 주인공의 자기실현 수준에는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헤세는 자기 발견과 자기실현을 위해서는 남의 가르침이 아니라 스스로의 깨우침이 중요함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위에 소개한 문장은 싯다르타가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우연히 만난 친구 고빈다와 나눈 얘기다. 이 문장에 앞서 그는 이런 말도 했다. “(나도) 여러 사상을 가져보긴 했으나 그것을 자네에게 전하기는 힘들 듯싶데. 이 보게 친애하는 고빈다, 내가 찾은 사상 가운데 하나는 바로 지혜란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야. 지혜란 현자가 아무리 그것을 전하려 해도 언제나 어리석은 소리로 들리기 마련이거든.”


이 말은 싯다르타가 굳이 따뜻한 부모 품을 떠나 고행길에 나선 이유이기도 하고, 중간에 만난 부처의 가르침을 거부한 이유이기도 한 듯싶다. 지식은 자기보다 수준이 높은 부모나 스승, 현자의 가르침으로 익힐 수 있지만 자기만의 성찰을 도모하는데 필요한 지혜는 절대 남에게서 배울 수 없다는 뜻이겠다.


싯다르타가 고향을 떠난 것은 아버지의 현주소를 보고서다. 아버지는 브라만 계급의 대단한 학자로서 어느 누구보다 존경받는 인물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행복할까에 대해서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렇게 많은 것을 아는 아버지라 한들 과연 참된 행복 속에 살며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얻었던가? 아버지 역시 구도자, 갈구하는 사람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아버지가 아들의 출가를 허락하며 한 말이 예사롭지 않다. “숲 속에서 네가 참된 행복을 얻는다면 돌아와 내게도 그 행복을 가르쳐다오.” 자식을 얼마나 신뢰했으면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헤세는 싯다르타가 부처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떠나는 순간의 심정을 이렇게 묘사했다. “이제 그는 자신이 더 이상 청년이 아니라 어엿한 장부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마치 뱀에게서 허물이 떨어져 나가듯 어떤 것이 자신을 떠나갔음을, 젊은 시절 내내 자신을 따라다녔으며 자신의 일부였던 것이 이제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지 않음을 확인했다.”


싯다르타는 누구나 배울 수 있는 지식이 아니라 각고의 독자적 성찰을 통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는 지혜를 찾아 나선 결과 결국 목표를 달성했다. 실제로 지혜는 우리 인생에서 지식과 비교할 수 없는 최상급의 덕목이다. 서양에서 철학의 영어 표현(Philosophy)은 지혜를 사랑한다는 의미다. 동양에서도 마찬가지다. 불교 핵심 경전인 반야바라밀다심경에서 가장 중시하는 개념이 바로 지혜다. 누군가 지식이 호구지책이라면 지혜는 인생지책이라고 했다.

 

자아실현의 지혜를 갈구하는 싯다르타의 이런 모습은 헤세의 다른 작품에도 자주 등장하는데, 사실은 헤세 자신의 인생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헤세는 외할아버지가 저명한 신학자, 아버지가 목사인 집안에서 태어나 당연한 듯 신학교에 진학했으나 적응하지 못해 학업을 중단했다. 부모와의 갈등, 사춘기 반항심과 고독으로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 시인이 아니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고서점 판매원으로 일하면서 작가의 길을 찾게 되었다.

 

그가 만약 순순히 부모의 가르침을 따랐다면 원하지도 않은 목사나 신학자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헤세는 이른 나이에 자기 발견을 시도했고 또 자기실현에 성공했다. 27세 청년기에 소설 ‘페터 카멘친트’를 발표해 유명세를 탔으며 41세 때 소설 데미안으로 일약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했다. 66세이던 1943년 소설 ‘유리알 유희’를 발표한 덕에 3년 뒤 노벨 문학상을 거머쥐기에 이르렀다.


헤세는 나약한 지식인에 머물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 시기 애국주의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식인 계층 동료들로부터 수없이 비난받았지만 굴하지 않았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까지는 인간성 말살을 시도하는 나치에 꾸준히 저항했다.

 

주체적 삶을 살며 85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자기실현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대부분의 소설에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집단 속 인간’이 아닌 순수 개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것은 특기할만하다. 후세 젊은이들에게 지금도 ‘다수에 저항하라, 나다움을 찾아라’는 목소리가 전해지는 듯하다.


이 시대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떤가. 언젠가부터 ‘자기 주도적 삶’이란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학교와 학원에서의 주입식 교육은 여전하고, 명문대 줄 세우기 식 입시가 극성이다. 학생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는 곳에 학생은 없고 부모와 교사만 보인다.


대학에서 부모가 대신 수강신청을 하고, 학점관리에 부모 도움받는 학생이 허다하다. 과거에 없던 일이다. 부모 희망이 반영된 로스쿨 진학이 유행이며, 취업은 여전히 고시와 대기업이 목표다. 자기가 주도하는 창업은 겁이 나서 손을 못 댄다. 


나이 서른이 넘어 결혼과 출산, 배우자와의 관계까지 부모에게 간섭받는 게 예사다. 마마보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마마 청년, 마마 어른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출산아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부모, 조부모의 그늘이 더 커지는 데다, 평균 수명이 길어져 건강한 부모와 함께할 시간이 늘고 있으니 이런 추세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경제적, 물질적으로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윤택함에도 우리가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자랑스럽게도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음에도 다른 나라에 비해 유달리 자살률이 놓은 이유는 무엇인가. 헤세를 소환하지 않고는 답을 찾기 어렵다.


100년 전에 출판된 싯다르타의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며 소중하다. 자기 개개인이 특별한 존재이며 더없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하루빨리 깨달아야 한다. 부모의 생각, 다수의 집단사고, 기존 종교와 사상에 구속되어서는 행복을 찾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겠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프랑스 철학자 자크 라캉의 말이 당신에게만은 사실이 아님을 보여줘야 한다.


우리는 자기 인생에서 누구나 주인공이다. 누가 뭐래도 자기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 세상이 희망하거나 요구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참모습을 찾아야 한다. 지금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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