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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Aug 30. 2021

<2> 아이들에게 자유를 돌려줘라

세상과 부모의 욕심에 휘둘려 신음하도록 놔둬서야 되겠는가

“아이의 움직임을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무슨 놀이를 하든 자유롭게 놓아두어야 한다. (중략) 어른은 나약한 아이에게 안내자로 그쳐야지, 아이의 천성 계발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장 자크 루소의 ‘에밀’) 



프랑스 사상가 장 자크 루소는 자기 아이 다섯 명을 낳자마자 모두 고아원에 보냈다. 33세에 만난 동갑내기 세탁부 테레즈와 함께 살며 낳은 아이들로, 평생 한 번도 돌보지 않았다.


그런 루소가 50세이던 1762년 불세출의 교육론인 ‘에밀’을 발표하자 조롱과 비난이 들끓었다. “자기 아이 하나 양육하지 않은 주제에 교육론이라니.” 그는 이를 염려한 듯 책 서문에 변명을 겸한 반성의 글을 남겼다. “가난도 일도 자존심도 자기 아이를 직접 양육하고 교육시키는 의무를 면해주지는 않는다.”


공개적으로 잘못을 고백했지만 참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그가 평생 가난하게 살았으며, 아이를 돌볼 아내와 처가의 사정이 고약했다지만 이런 무책임한 행태는 당시 지식인 사회에서 기이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그가 ‘모순적인’ 철학자라 불리는 이유 중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밀은 희대의 걸작이다. 근대 교육학을 개척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교양소설 형식으로 씌어진 에밀은 루소가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고아가 된 가상의 아이 에밀을 공화국에 부합하는 건전하고 자유로운 시민으로 키워나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렸다. 태어나면서부터 결혼할 때까지의 이상적인 교육 과정을 총 5부로 나눠 서술했다.


에밀은 ‘자유’와 ‘자연’이라는 두 가지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내가 이 책 독서 중에 특별히 주목한 부분은 유아와 어린이, 즉 태어나면서부터 10대 초반 정도 시기다. 위에 제시한 문장을 한마디로 축약하면 ‘어른들이여,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상태를 무조건 보장하라’가 아닐까 싶다.


‘교사’ 루소의 교육관을 자세히 한 번 들여다보자. 그는 아이가 갖고 태어난 ‘선한 자유’를 반드시 보존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귀족들이 자녀 교육을 위해 보내는 수도원이나 수녀원 기숙사가 아이들을 사실상 감금시켜 ‘마음이 결여된 어른’을 만든다고 봤다. 가정도 마찬가지여서 부모나 가정교사들이 교육을 핑계로 아이에게서 자유를 빼앗아 고통을 안겨준다고 진단했다.  


“사람들이여, 아이의 놀이와 즐거움과 사랑스러운 천성을 독려하라. 웃음이 항상 입가를 떠나지 않으며, 영혼이 언제나 평화로웠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왜 당신은 그 천진한 아이에게서 쏜살같이 지나가는 그렇게도 짧은 순간의 환희와 그들이 남용할 줄 모르는 귀중한 행복을 빼앗으려 하는가.” 


루소는 행복 중에 제일가는 행복은 권력이 아니라 자유라고 단정하면서, 아이에게 자유를 주라고 말한다. “참으로 자유로운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만을 바라며 자신의 의사대로 행한다. 이것이 기본 원칙이다. 문제는 이것을 유년 시절에 적용시키는 데 있다. 교육의 모든 원칙과 이념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루소는 자유 못지않게 자연을 중시했다. 그는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게 좋다며 에밀을 시골에서 키운다. “도시는 인류를 타락으로 이끄는 심연(深淵)이다. 이곳에 사는 종족은 몇 세대 후 멸망하거나 쇠퇴하고 말 것이다. 그들을 새롭게 소생시킬 수 있는 곳은 농촌이다. 아이를 농촌으로 보내라. 도시에서 잃어버린 그들의 생기를 전원에서 찾도록 해주어야 한다.” 


이는 그가 남긴 유명한 화두 ‘자연으로 돌아가라’의 핵심 문장이다. 태어날 때 선하게 지니고 나왔으나 어느새 악의 구렁텅이에 빠져버린 아이의 본성을 자연에서 회복시켜 줄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어릴 적 독서광이었던 루소는 에밀에서 아이가 15세가 될 때까지는 독서를 금해야 한다는 다소 엉뚱한 주장을 한다. 그러면서 단 하나의 책은 예외로 했다. 다니엘 디포의 소설 ‘로빈슨 크루소’가 그것. 영국 선원이 항해 중 납치를 당해 무인도에서 자연과 싸우며 무려 28년간 생존하다 귀국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루소는 이런 책의 경우 자기 보존 능력을 키워주기 때문에 어릴 때 읽더라도 유용하다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은 루소 자신이 어릴 적부터 평생 자연을 벗 삼아 시골에 살았던 경험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가정적으로, 경제적으로 고단한 생을 살았지만 자연의 도움을 받았기에 그나마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는 인식 말이다.


루소는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어머니가 죽는 바람에 성장기 내내 불행했다. 시계 수리공 아버지는 아들한테 관심이 없었으며 14세 때 재혼하면서 영영 갈라서고 말았다. 이후 동판 조각공, 필사 견습공, 하인, 가정교사 생활을 전전했다.


그는 16세 때 교양과 미모를 갖춘 열두 살 연상의 바랑 부인을 만나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서로 엄마, 아가라 부르다 애매한 연인으로 발전한 두 사람은 이후 약 15년간 친교를 유지했으며, 대부분 아름다운 계곡과 같은 자연에서 살았다.


루소는 특히 20대 초반 5년간 샤르메트 계곡에서 바랑 부인과 함께 지내며 다방면의 독서에 심취했다. 철학, 신학, 문학, 역사학, 지리학, 기하학, 천문학 등 그야말로 통섭적 독서를 했다. 위대한 사상가의 틀은 이 시절 자연 속에서 다듬어진 셈이다.


루소에게 자연이란 산천초목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일상의 ‘자연스러움’을 더 중요하게 여긴 듯하다. “자연은 어린이가 어른이 되기 전에는 어린이로 있기를 바란다. 만일 이 순리를 바꾸려 한다면 설익고 맛도 없으며 곧 썩어버리는 속성 과일을 만드는 꼴이 될 것이다. 유년기에는 그들 특유의 보는 법, 생각하는 법, 느끼는 법이 있다. 이러한 그들 특유의 방법을 어른의 방법으로 대치시키려고 하는 것은 미련하고 무분별한 일이다. “


어른이 아이를 속박하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움이다. 에밀에서 루소는 이렇게도 말한다. “어린이는 어린이다워야 한다. 어린이는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고통받아서는 안 된다. 어린이는 어른에게 의존해야 하지만 복종케 해서는 안 된다. 어린이에게는 요구를 해야지 명령해서는 안 된다.” 루소는 자연 상태에 있는 아이는 자기 능력과 욕망간의 차이가 적기 때문에 그만큼 행복하다는 점도 강조한다. 


260년 전 당시 상황에서 에밀은 아이의 시각으로 기획된 급진 교육이론이었다.  학계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음은 당연하다. 독일의 괴테는 “호주머니에는 호메로스, 머리에는 에밀에 관한 기억이 항상 담겨 있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칸트는 에밀을 읽느라 정확하기로 유명한 정시 산책 기회를 놓쳤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루소는 학문적 명성을 얻었지만 엄청난 시련을 감수해야 했다. 에밀은 출간되자마자 불과 2개월 전에 출간된 또 다른 저서 사회계약론과 함께 금서 처분을 받고 말았다. 제4부에 있는 ‘사부아 보좌신부의 신앙고백’이 이른바 이신론(理神論)에 해당돼 당국과 기독교계의 분노를 샀기 때문이다. 이후 그의 인생 대부분은 도피와 은둔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곳은 자연이었다.


에밀은 내용에 모순이 없지 않고 오랜 세월이 흐른 탓에 현시점 적용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하지만 아이의 올바른 성장에 자유와 자연이 소중함을 역설한 루소의 목소리는 지금도 쟁쟁하게 들려오는 듯하다. 우리 사회 젊은 부모들이 아직도 그 메시지를 제대로 새겨듣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이 시대 우리 아이들은 자유로운가, 그리고 자연스러운 환경에 놓여있는가.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 아이들은 겉으로는 별 불만 없이 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세상과 부모의 욕심에 휘둘려 속으로는 신음하고 있다. 경쟁의 채찍이 난무하는 숨 막히는 도시를 떠나 푸르른 자연 속에서 큰 호흡으로 자유를 노래할 수 있는 농촌으로 당장 달려가고 싶어 한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어디서나 쇠사슬에 매여 있다.” 사회계약론 첫머리에 나오는 말이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묶어놓은 쇠사슬을 이제 풀어줘야 하지 않을까.


인용하거나 참고한 책

<에밀> 장 자크 루소, 김중현 옮김, 한길사, 2003

<에밀> 장 자크 루소, 정영하 옮김, 연암사, 2017

<루소가 권하는 인간다운 삶> 김중현, 한길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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