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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Aug 31. 2021

<3> 부부, 서로 사랑하되 구속하지 말라

일심동체 아닌이심이체.상대방의 고독과 내면을 이해해줘야

“서로 사랑하되 속박이 되도록 하지는 마십시오. 사랑이 두 분 영혼의 해변 사이에서 출렁이는 바다가 되게 하십시오.”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칼릴 지브란은 흔히 ‘중동의 성자(聖者)’라 불린다. 국어사전에서 성자는 ‘지혜와 덕이 매우 뛰어나 깊이 우러러 본받을 만한 사람’을 가리킨다. 기독교에서는 거룩한 신도나 순교자, 불교에서는 모든 번뇌를 끊고 바른 이치를 깨달은 사람을 말한다. 그가 바로 이런 사람이다.


레바논 출신 시인이자 화가인 지브란은 위대한 철학자라 해서 틀리지 않다. 그의 작품들을 읽다 보면 사상이 심오하고 인생을 달관했다는 느낌을 갖는다. 영적이며 신비적인 삶의 이미지도 한몫했을 것이다. 특히 산문시집 ‘예언자’는 현대인들에게 사랑과 행복의 바이블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된다.


소개된 문장은 예언자 중 ‘결혼에 대하여’란 시에 나오는 표현이다. 사랑의 결 실로 결혼을 하더라도 두 사람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비로소 행복한 부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처럼 멋지게 묘사했다. 이 시는 한 마디 한마디가 예술이다. 


“두 분이 함께하시되 그 안에 공간이 있게 하십시오. 두 분 사이에서 하늘의 바람이 춤추게 하십시오.”

“서로의 잔을 채워주되 한쪽 잔에서만 마시지 마십시오. 서로에게 자기 빵을 나누어주되 한쪽 조각만을 먹지는 마십시오.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기뻐하되 각각 혼자이게 하십시오.”


“함께 서십시오.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지는 마십시오. 성전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서 있고, 참나무 삼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서는 자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글이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을까. 우선 지브란의 일생부터 살펴보자. 그는 1883년 레바논 북부 험준한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예수 그리스도 탄생지와 인접한 곳이어서 주민들은 주로 기독교 신앙을 갖고 살았다.


그는 어릴 적 자연과 더불어 영적 생활을 한 것으로 보인다. 고독과 예술을 즐겼다. 삼나무 숲이 우거진 골짜기에서 자연이 들려주는 음악과 침묵을 감상하며 자랐다.


아버지가 생활력이 강하지 못해 집이 가난했지만 어머니는 기독교 마론파 신부의 딸로, 프랑스어에 유창하고 미술과 음악에 재능이 있는 ‘능력자’였다. 그의 나이 12세 되던 해 아버지를 제외한 일가족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 보스턴에 정착했다. 


그의 어린 시절 지적, 예술적 성장에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지브란은 초기 작품 ‘부러진 날개’에서 어머니를 이렇게 묘사했다. “인간의 입술 위에 떠오르는 가장 아름다운 말은 ‘어머니’라는 말이다. 또한 가장 아름다운 부름은 ‘나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소리이다. 그것은 희망과 사랑에 충만한 말이며, 가슴 밑바닥에서 솟아오르는 감미롭고도 다정한 말이다.” 


보스턴에서 2년간 영어를 익힌 지브란은 고국의 수도 베이루트에 가서 모국어인 아랍어로 문학을 공부했다. 5년 뒤 보스턴으로 돌아온 직후 그는 사랑하는 어머니와 형을 잃고 실의에 빠지게 된다. 재기의 몸부림 끝에 지브란은 부유한 여자 교장 선생 헤스켈의 도움을 받아 프랑스로 건너가 문학과 그림을 공부했다. 이곳에서 유명한 조각가 로댕과 친교를 맺기도 했다.


 3년 뒤 미국으로 돌아와 뉴욕으로 거처를 옮긴 지브란은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전개한다. 이런 인생행로 영향인 듯 그는 아랍과 서구, 이슬람과 기독교라는 이중적 세계관을 갖고 살았다. 10년 연상의 후원자이자 연인인 헤스켈과 48세로 죽을 때까지 친교를 맺었으나 결혼하지 않은 걸 보면 ‘절제된 사랑’을 즐긴 것 같다.


영어로 씌어진 그의 대표작 예언자는 약 10년간의 작업 끝에 1923년 출판되었다. 헤스켈의 노력과 조언이 많이 담긴 것으로 짐작된다. 예언자는 알무스타파라는 현인이 12년간 머물던 오팔리즈를 떠나 고향 섬으로 돌아가면서 주민들에게 삶의 진리를 전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출생에서 죽음까지 26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예언자는 출판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이후 10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으로 꼽힌다. 단테의 ‘신곡’이나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버금가는 작품이란 평가를 받는다.


문장 하나하나가 우아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데다 내용이 시공을 초월해 누구나 공감할 정도로 진실되기 때문일 것이다. 평소 인간 심성의 깊은 곳을 끝없이 탐색한 결과 아닐까 싶다. 지브란은 생전에 “시인은 영혼의 치유자, 인류 구원을 위해 예술을 가져다주는 예언자”라고 말했다.


예언자에서 결혼의 전제가 되는 사랑에 대해 지브란은 이렇게 노래했다. “사랑은 여러분에게 금관을 씌우기도 하지만 여러분을 십자가에 못 박기도 합니다. 사랑은 여러분을 자라게도 하지만 여러분의 가지를 쳐내기도 합니다. 사랑은 높이 올라가 햇살을 받으며 하늘거리는 여린 가지를 어루만지기도 하지만 밑으로 내려가 대지에 박힌 뿌리를 뒤흔들기도 합니다.”


이처럼 지브란은 사랑과 결혼을 매우 현실적으로 진단한다. 지고지순한 사랑을 경험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처음처럼 지속되기 어렵다는 점을 가르치고 싶어 한다. 특히 결혼은 상상 속의 낭만이 아니라 삶의 현실임을 강조한다. ‘결혼에 대하여’란 시는 부부가 굳이 하나가 되고자 집착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실제로 이 시대 우리 젊은 부부들이 하나가 되지 못해 안달복달하는 과정에서 사이가 틀어지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부부가 일심동체(一心同體)가 아니라 이심이체(二心異體)임을 깨닫지 못한데 따른 불화다. 


미국의 존 그레이 박사는 일찍이 부부학 지침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란 책에서 이 부분을 명쾌하게 짚었다.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는 자신들이 서로 다른 행성 출신이고, 따라서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들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서로의 차이점들이 기억에서 모두 지워지면서 충돌하기 시작했다.”


  부부가 서로의 생각 차이를 명확히 인식하고 상호 존중하면 갈등 요인이 생기지 않는다. 30년간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이 아무리 사랑한들 한 공간에 살다 보면 충돌하기 마련이다. 이때 그 차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상대방과 다를 뿐이지 상대방이 틀린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그만이다. 


남자는 고무줄 같고, 여자는 파도 같다는 그레이 박사의 진단처럼 부부가 남녀 간의 보편적 성격 차이까지 인정하면 더없이 평화로울 것이다. 남자는 자기 동굴로 들어가고 싶어 하고, 여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는 진단도 마찬가지다.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것은 ‘결혼 속의 사랑’ 지키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흔히 결혼은 사랑의 종말이라고 한다. 사랑의 결실인 결혼이 사랑의 종말이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런 느낌을 갖는 부부는 의외로 많다.


왜 그럴까. 결혼은 연애에 종지부를 찍고 법적 책임이 수반되는 가정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사랑에 갑자기 부모형제, 일가친척이 끼어든다. 법과 제도로 배타적 사랑을 보장받게 되지만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가 가볍지 않다. 두 사람의 권한과 의무 행사가 적절히 작동되면 별 문제없겠지만 그것이 한쪽으로 기우는 순간 분란이 생기게 된다.


 지브란의 성찰과 가르침은 이 부분을 정확히 짚어준다. 사랑을 하되 서로 구속하지 말라는 것이다. 가정을 이뤄 함께 살지만 일정한 거리를 둬야 부딪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함께 서되 너무 가까이 서지 말라는 시구는 냉정하기 짝이 없는 표현이다. 


사랑하던 두 사람이 결혼을 하게 되면 흔히 상대방의 사랑을 의심하게 된다. 사랑이 식었는데도 어쩔 수 없이 사는 것 아니냐는 느낌을 갖기 일쑤다. 하지만 상대방의 고독을 이해하고 흔쾌히 빈자리를 내어주면 그런 느낌이 사라질 수 있다. 그러려면 상대방이 자기만의 독창적인 내면을 가진 고유한 인격체라는 사실을 마음 편하게 인정해야 한다. 

 

원만한 결혼생활을 위해서는 불타는 사랑보다 냉정한 사랑이 더 좋을 수도 있다. 이것이 지브란의 가르침이다.


인용하거나 참고한 책

<예언자> 칼릴 지브란, 오강남 옮김, 현암사, 2019

<예언자, 부러진 날개> 칼릴 지브란, 김지영 옮김, 브라운힐, 2015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존 그레이, 김경숙 옮김, 친구미디어,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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