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기존 업무 프로세스/ 인프라 그대로 활용
국제화는 단지 외국인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진정한 국제화는 그들이 우리 시스템 안에서 차별 없이, 불편 없이,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현재 국내 많은 대학에서는 국제대학을 설립하고 외국인 학생과 교원을 유치한다고는 하지만, 정작 그들을 둘러싼 행정, 시스템, 문화 인프라 전반은 여전히 내국인 중심으로 고정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는 의도치 않게 외국인 학생과 교원을 ‘2등 시민’처럼 대우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로 인해 만족도는 낮고, 재등록률과 재직 유지율 역시 떨어진다. 명목상 ‘국제화’를 추구하지만, 실상은 ‘내국인 중심 시스템에 외국인을 끼워 넣는 것’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국인 교수를 채용한다고 하지만, 대학 채용 홈페이지는 여전히 한국어로만 운영되고 있다. ‘Apply’ 버튼은 있지만 클릭하면 한국어 채용공고 PDF가 뜨고, 지원자 등록은 한국 주민번호 형식을 요구하거나, 한국인만 사용할 수 있는 공인인증서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지원 단계부터 외국인은 접근하기 어려운 장벽에 직면한다.
채용 이후에도 문제는 계속된다. 대부분의 대학은 교수 채용 절차와 일정이 내국인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어, 외국인 교수는 서류 합격 후 비자 발급 일정에 맞춰 임용을 진행하지 못하는 일이 잦다. 이로 인해 실제로는 합격했음에도 한 학기 또는 1년 뒤에야 정식으로 부임하게 되며, 중간에 계약을 포기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는 국제 인재 유치의 연속성과 신뢰성을 훼손하는 심각한 리스크다.
한국의 대학 수강신청 시스템은 대부분 한국어 기반이다. 외국인 학생들은 본인의 과목명조차 이해하지 못한 채, 선배의 스크린샷을 보고 따라 입력하거나, 에이전트의 도움을 받아 시간표를 짜는 식의 ‘비공식적 해결책’에 의존한다.
심지어 출석 앱이나 학생 포털에서 학생 본인의 이름이 ‘홍길동(우즈베키스탄)’처럼 한글로만 표기되거나, 해외 번호를 시스템에서 인식하지 못해 공지사항 수신에 불이익을 받는 사례도 많다. 이처럼 디지털 인프라조차 외국인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설계되어 있으며, 이는 실질적인 소외감과 불편함을 유발한다.
외국인 학생, 특히 무슬림, 힌두교도, 불교도 등 비서구권 학생의 경우, 일상생활에서 종교·문화적 불편함이 매우 크다. 무슬림 학생들은 할랄식 식사 제공이 불가능하거나, 기도실이 없어 강의 중간 빈 강의실을 수소문해 기도를 해야 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는 단지 불편의 차원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이 존중받지 못한다는 깊은 좌절감으로 이어진다.
특정 국적 학생이 많은 경우에도 문제는 반복된다. 예를 들어 중국,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출신 학생들은 언어 수준, 커뮤니케이션 방식, 수업 참여 태도, 교수와의 관계 형성 방식 등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만,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이들을 한꺼번에 ‘외국인’으로 분류하고 동일한 안내문, 규정, 생활지도를 적용한다. 그 결과 어떤 그룹은 과도한 개입을 받고, 다른 그룹은 방치되며, 이는 불공정한 처우와 학습 부적응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문제는 학생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외국인 교수들 역시 똑같은 시스템의 장벽을 경험한다. 예를 들어:
교내 행정제도가 한국어 기반으로만 안내되거나, 학내 회의가 한국어로만 진행되어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
정년트랙 평가 기준이 국내 교수 중심으로 설계되어 연구 실적 인정 기준이 불합리하거나 불명확
연구비 집행 시 한국 내 은행 계좌, 카드, 세금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아 행정 처리에 반복적으로 불이익
이처럼 외국인 교수들은 표면적으로는 ‘국제화 상징’으로 내세워지지만, 실질적으로는 구성원으로서의 권리와 정보 접근성, 제도적 보호에서 배제되고 있는 현실이다.
‘한국에 왔으면 한국식으로 해야지’, ‘다문화는 배려가 아니라 적응이다’라는 인식은 오히려 외국인 유학생과 교원을 유치하지 않겠다는 선언과 다를 바 없다. 단지 한국어로 수업을 듣고, 한국 문화를 배우는 차원을 넘어서, 대학이라는 조직 내에서 존중받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동등한 시민’으로 대우받는 것이야말로 국제화의 본질이다.
이러한 문화적, 제도적 감수성이 결여된 국제화는 결국 외국인 학생과 교원을 정량적으로만 유치하고, 정성적으로는 방치하는 형식적 국제화에 그친다. 이런 국제대학은 시간이 갈수록 브랜드 가치와 신뢰도를 상실하게 되며, 우수한 외국인 인재는 더 이상 오지 않는다.
진정한 국제화는 ‘우리가 만든 틀 안에 외국인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새로운 틀을 만드는 것이다. 대학이 국제화 전략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외국인 학생과 교원을 단지 데려오는 대상이 아닌, 대학을 함께 만들어갈 공동체 구성원으로 바라보는 패러다임 전환이 절실하다.